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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사랑] 옹다무스 클럽

중앙일보

입력

인터넷을 통해서 청소년들이 음란물에 손쉽게 접근하게 되면서 자녀들의 성문제에 불안감을 느끼는 부모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방송을 보다 보면 부모가 감춰두었던 블루 필름을 장롱 속에서 찾아내 형제가 둘러앉아서 보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는 하소연을 듣게 된다. 아마 적지 않게 불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장과정에 겪게 되는 일종의 홍역과 같은 것으로 너무 걱정할 일은 아니다.

그 실례로서 포르노를 세계 최초로 해금한 덴마크의 청소년들 실태를 알아보자. 과연 그것이 좋지 않은 영향만 주었던 것일까?

덴마크 성인 사회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포르노 해금 초창기에 있었다. 가정에 배달되는 신문에 남자와 여자가 알몸으로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실려 있는 수가 많았고, 우리네 증기탕 같은 곳이나 피임기구 등의 야한 광고가 나오는 수가 있으며, 부모들이 외부에서 보다가 가져온 잡지들 가운데 포르노 잡지가 섞여 있는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학교의 성교육 시간에 훨씬 더한 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판매되는 것을 보면 포르노의 실수요자는 노인들뿐이었다고 한다. 노인들은 일종의 회춘제로서 그것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포르노가 해금되었을 때 거의 모든 덴마크 성인들이 포르노를 사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곧 싫증을 느끼고 난로에 처넣어 버렸다. 부부가 각각 포르노를 보기도 하고 흉내낼 수 있기도 하니까, 책이나 필름은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덴마크의 부모들은 학교에서의 조기 성교육이 오히려 고맙다고 말한다.

자신들이 사춘기에 있었을 때는 아무것도 몰라서 자신이 과연 정상적인가 하고 걱정하기도 하고, 섹스에 흥미가 있으면서도 임신하는 것이 무서워서 솔직하게 행동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모친 입장에서도 딸이 충분하게 피임지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밤에 늦게 돌아오더라도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는다.

그들이 자녀 연령이었을 때는 사정이 지금과 1백80도 달랐다. 귀가시간이 늦을 때마다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느냐’라고 꾸지람을 들었으므로, 타고 있던 차가 고장났느니 화재가 발생해서 구경했느니 하고 거짓말을 해댔다.

그 부친은 딸의 배가 꼴사납게 불러오는 것을 보게 될 경우를 가장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도 젊은 남녀 사이의 섹스는 엄연히 성행되고 있었으므로 당연한 걱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피임에 실패해서 아기를 잉태하면 나이가 어려도 결혼을 서둘렀다. 그런 결혼이 행복할 리가 없었다.

덴마크 처녀들이 그녀의 동정을 버리는 곳은 대개 옹다무스 클럽이다. 이것은 공립의 취미 서클 같은 것인데 대개는 구청에서 운영한다.

구에서 장소를 마련하고 양재라든가 오토바이 조립 같은 기술을 가르쳐 주거나 도예 교실을 열어준다. 물론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당구를 치며 놀 수도 있다.

이곳으로 학교의 수업을 마친 초등학교 상급생이나 고교생, 또는 건축, 전기, 야금 등의 견습공으로 일하며 직업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 꾸역꾸역 모여든다.

외견상으로는 취미 클럽이지만 옹다무스 클럽의 가장 큰 목적은 젊은 남녀에게 교제 장소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요컨데 이것은 세금으로 경영하는 공립의 데이트 회장인 것이다.

직업학교에 다니는 총각들은 반쯤 사회인으로서 막 어른이 되려고 하고 있다. 이 총각들이 성지식만은 이미 풍부하므로 언제든 침대에 갈 준비가 다 되어 있는 처녀들을 유혹한다.

클럽에서 알게 된 젊은이들은 각자의 아파트로 상대를 데려가기도 하고, 집에서 파티를 벌이고 그 곳에서 성교를 하게 되기도 한다.

부모들은 빈번히 부부동반으로 출타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파티는 그렇게 부모가 집을 비운 틈을 타서 행해진다.

파티에는 클럽에서 서로 알게 된 친구들, 또 그 친구들의 친구들까지 각양각색의 남녀가 모여든다.

그리고 서로가 목적은 모두 다 같으므로 섹스 파트너를 발견하기는 간단하다.

결국 옹다무스 클럽은 완벽한 성교육의 결과로 조숙하게 된 젊은이들에게 실천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는 장소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공공기관에 의한 빈틈없는 배려의 결과로 처녀들의 첫경험 평균 연령은 차차 낮아져 간다.

1950년대에는 18세였으나 60년대에는 17세, 70년대에는 16세로 되었다. 지금 통계를 내면 훨씬 더 내려가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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