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대한 성추행 고소 사건 관련, 여가부의 입장 정리가 늦어진 데 대해 변명성 해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장관은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피해자 보호 등 대책 마련을 위한 민간 전문가 긴급 회의'를 열었다. 지난 9일 박 전 시장 성추행 고소 사건이 알려진 뒤 8일 만에 주무 부처 수장이 처음으로 나선 자리다.
이날 회의에는 이경환 변호사, 이수정 경기대 교수, 정은자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대표, 최금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대표, 이소라 노무사, 장형윤 경기남부해바라기센터장 등 여가부의 여성폭력방지위원회 민간위원 6명이 참석했다.
회의 참석자의 전언을 종합하면 이 장관은 박 전 시장 사건에 대해 "여가부가 입장을 빨리 정리하지 못했다"며 늑장 대처를 인정했다고 한다.
민간위원들은 "여가부의 대응이 늦어서 아쉽다" "이전 사건과 비교할 때 대응이 달랐다"고 비판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 때와 다른 대응을 지적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이 장관이 여가부가 빨리 대응하지 못한 이유로, 박 전 시장 사망 등 예기치 못한 사태에 진영 논쟁이 너무 거세진 점을 들었다"며 "여가부가 나섰다가 오히려 2차 피해가 심해질 것을 우려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고 전했다.
다른 참석자는 여가부가 피해자라는 용어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부분을 지적했다고 전했다. 여가부는 14일 첫 입장을 내며 박 전 시장을 고소한 전직 비서 A씨에 대해 '고소인'이라고 표현했다. '피해자'라는 용어도 함께 썼다.
이 장관은 피해자 호칭 관련해선 "여러 고려할 사항이 있어서 의견을 청취하느라 시간이 걸렸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여가부는 16일 정례 브리핑에서 여권이 A씨에 대해 '피해 호소인'이라고 일컫는 데 대해 "피해자로 불러야 한다"고 명확히 했다.
이 장관은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되기 전 모두 발언에서도 "최근 지자체·공공기관 등에서 발생한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지켜보면서 예방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마음이 무겁고, 책임감을 갖는다"고 밝혔다. 또 "여전히 피해자가 마음놓고 신고하지 못하는 현실을 확인했다"며 "최근 피해자가 겪고 있는 심각한 2차 피해 상황이 몹시 우려스럽고, 피해자가 겪는 정신적 압박감과 심리적 고통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도 했다.
1시간 정도 이어진 회의에서는 민간위원들은 구체적인 피해자 지원 방안, 지방자치단체장이 성폭력 행위자일 경우 외부 기관의 감시·감독 필요성을 건의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강도 피해자나 사기 피해자는 피해자라 불러주면서 성범죄 피해자는 피해자로 불려선 안 되느냐"며 "피해자라 불러도 (상대편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무죄 추정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피해자의 지위와 연관된 논쟁은 더 이상 필요치 않고, 여가부도 피해자에 대한 인식과 2차 가해에 대한 심각성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가부는 향후 선출직 지자체 기관장 사건처리 절차 마련을 위한 실무회의와 범정부 부처와 민간위원이 참석하는 여성폭력방지위원회 전체회의를 개최해 후속 조치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