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백선엽에 대한 광복회장의 해괴망측한 발언, 참담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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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나라가 혼란스러워서인지 사회 지도급 인사의 해괴망측한 말이 줄을 잇고 있다. 한국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에 대한 김원웅 광복회장과 노영희 변호사의 비하 발언은 도를 넘었다. 최근 별세한 백 장군은 육군장으로 어제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그는 1950년 북한 김일성이 소련과 중국 등 공산 세력과 모의해 남침한 한국전쟁에서 대한민국을 구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당시 1사단장으로 경북 다부동에서 북한군 3개 사단을 막아내 한반도 공산화를 저지했다. 그때 백 장군이 없었더라면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는 휴전한 뒤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래서 지금의 한·미 동맹이 구축됐고, 주한미군 장성들은 백 장군을 살아 있는 전설로 존경했다.

김원웅 “한국전쟁 때 민간인 학살” 망언 #노영희, 북한군에 총 쏜 게 잘못됐다 주장

그런데도 광복회장은 “(백 장군이) 한국전쟁을 전후해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이어 백 장군을 ‘영웅’으로 부른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을 본국으로 소환해 달라는 서한을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보냈다. 도대체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인가. 고인은 한국전쟁에서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국군과 수많은 양민을 살해한 북한군에 대응한 것뿐이었다.

김 회장의 주장처럼 백 장군이 전쟁 때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독립운동가 후손 단체인 광복회는 국가보훈처 소속으로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런 단체의 회장이 국가유공자를 비하하는 것은 국가 기강을 해칠 수 있어 우려된다. 또 광복회장이 무슨 자격으로 미 대통령에게 주한미군사령관을 소환하라, 말라 하는가. 한·미 동맹을 이간질하려는 행동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다.

이뿐이 아니다. YTN 라디오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노영희 변호사도 백 장군을 터무니없는 말로 비난했다. 노 변호사는 그제 모 방송에 출연해 “백선엽, 우리 민족 북(한)에 총을 쏴 이긴 공로로 현충원에 묻히느냐”고 말했다. 고인이 전쟁 중에 북한군에 총을 겨눈 것이 잘못됐다는 식으로 호도한 것이다.

노 변호사의 말대로라면 국군은 남침한 북한군에 대응하지 말아야 했고, 한반도가 공산화되도록 놔뒀어야 했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의 주적이 누구인지를 망각한 한마디로 정신 나간 발언이다. 노 변호사가 어제 자신의 발언에 사과하고 YTN 라디오 진행에서 하차했지만, 이대로 끝날 일이 아니다. 그의 주장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헌법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법을 논하는 변호사로 활동해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을 위해 희생한 수많은 호국영령 앞에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