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노조 침묵 깼다 "박 시장 측근 잘잘못 규명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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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문 의혹에 대해 침묵을 지켜오던 서울시 공무원노조가 14일 성명서를 냈다. 노조 측은 피해자 대책 마련과 함께 박 시장의 성추문과 관련된 보좌진들의 책임 규명 등을 요구했다.

서울시 공무원노조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고인을 추모하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인 것처럼 몰아가는 상황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마찬가지로 고인을 비난하는 것이 곧 피해자를 위하는 것처럼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공감하기 어렵다"고 했다. "고인에 대한 애도와 진실규명은 별개로 다룰 수 있는 일"이라면서다.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냈다는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중앙포토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냈다는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중앙포토

"2차 가해 나오지 않도록 대책 마련해야"

노조는 "박 시장과 같은 극단적 선택은 반복돼선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어떤 경우라도 공직자는 공적 책임이 우선한다는 명제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면서다. 노조는 이어 "특히 '2차 가해'라는 말이 절대 나오지 않도록 피해자를 위한 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엄연한 피해자에게 죄책감이 들게 몰아가는 것이야말로 2차 피해를 양산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노조는 책임규명도 강조했다.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바와 같이 시장과 임기를 같이 하는 별정직 등은 절차대로 하면 되지만 그 외 상당수 측근 인사들은 고인을 잘못 보좌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박 시장의 사망으로 고한석 비서실장 등 27명의 별정직 공무원은 지난 10일 면직된 바 있다. 그외 비서실 직원들은 모두 원대복귀해 서울시청 6층 비서실은 비어있는 상태다.

노조 측은 또 "이 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은 수사·사법 기관의 몫이라 하더라도 고인을 가까이서 보좌해온 인사들의 잘잘못도 규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추문 의혹을) 사전에 몰랐다면 그 불찰이 큰 것이고, 사실이나 정황을 조금이라도 인지하고 있었다면 그에 상응한 책임도 무겁게 따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이 13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열린 가운데 고인의 영정과 위패가 추모공원으로 향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이 13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열린 가운데 고인의 영정과 위패가 추모공원으로 향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9개월의 공백…높아지는 우려

노조는 이어 시장 부재에 따른 우려도 전했다. 시장 궐위로 내년 4월 보궐선거가 치러질 때까지 서울시장 자리는 공석으로 남게 됐다. 노조는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행정1부시장)이 시정을 맡고 있으나 "외부로부터의 간섭이나 압력"이 우려된다고 했다.

노조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수도 서울을 글로벌 도시로 성장시킨 실질적인 주역들은 역대 시장들이 아니라 묵묵히 소임을 완수해 온 직업 공무원들"이라며 "시장 공백기라고 해서 서울시 공직사회가 급격히 흔들릴 이유도 없다"고 밝혔다. 노조는 "중앙정부나 정치권 등에서 부당한 개입을 하려 한다면 결연하게 막아내야 한다"며 "시장 대행 등 일부 고위층에만 시정 일체를 맡겨 둘 일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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