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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엔 내가 자리 만들게요" 박원순의 마지막 만찬 약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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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다시 만나자 약속했는데…."
약 2시간에 걸친 만찬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고 했다. 막걸리가 오갔고, 덕담을 했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과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함께한 전·현직 구청장들이 전한 박 시장의 마지막 만찬 이야기다.

지난 8일 전현직 구청장들과 만찬한 박원순 시장 #"내년 1월 내가 자리 마련" 약속하기도

이날 저녁 자리 참석자들은 총 11명. 서울 성북구의 한 식당에서 모임이 열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몇 번 미뤄진 자리였다고 한다. 민선 5·6기 기초단체장(구청장) 모임으로 저녁은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이뤄졌다. 이날 참석자 가운데선 4·15 총선에서 금배지를 달고 여의도 입성에 성공한 사람도 있는 데다 생일을 맞은 사람도 있어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12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故)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12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故)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건배사로 '의리' 외쳤다

만찬 자리에 참석한 한 구청장은 "평소처럼 저녁 식사를 했다. 전혀 (성추문과 관련된) 이상한 기색은 없었다"며 "당일 생일자도 있어서 축하해주고 막걸리를 했다"고 전했다. 박 시장은 평소 술을 잘 안 하는 편으로 이날 막걸리 한잔 정도를 마셨다고 한다. 참석자들은 건배사로 다 같이 '의리'를 외쳤다. 한 참석자는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지지율은 다소 낮아도 박 시장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의리'를 외친 것"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최근 정무라인을 대거 교체하는 등 차기 대선을 겨냥한 의욕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만찬 자리에서 박 시장은 밝은 표정이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구청장은 "만찬 다음날 박 시장의 사망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박 시장에 대해 "평소 개인적으로 상금 받은 돈은 모두 기부했고, 민족문제연구소에 애정이 깊어 집을 팔아 현재 가치로 한 30억원 가까이 되는 돈을 기부한 사람"이란 말도 전했다. "서울시장으로서 서울 각 구에 권한과 재원 배분을 많이 해줬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 구청장은 "광역단체장이 기초단체장에게 잘 해주기 어려운데 권한 배분과 재정 배분을 잘해준 시장"이라며 "그 뜻을 기리기 위해 빈소에서 구청장들이 상주 역할을 교대로 하고 운구 위원까지 맡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서울판 그린뉴딜' 기자설명회 정책을 설명하는 고(故) 박원순 시장.연합뉴스

지난 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서울판 그린뉴딜' 기자설명회 정책을 설명하는 고(故) 박원순 시장.연합뉴스

"내년 1월엔 내가 자리 마련" 약속했는데

또 다른 한 구청장은 "전혀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며 허탈해했다. 그는 "내년 1월엔 박 시장이 직접 자리를 마련하기로 약속했다"고 전했다. 3개월에 한번씩 모임을 가져왔는데 내년 초 모임은 박 시장이 직접 주관하겠다고 하는 등 분위기가 시종 좋았다면서다.

한 참석자는 "저녁식사 분위기가 밝고 유쾌했던 터라 (다음날 사망 소식에) 너무 황당했다. 그런 소식(성추문 의혹)을 알았다면 그렇게 보내드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 시장이 만찬 후) 귀가하고 그 사실(성추문 관련 피소)을 알았을 것"이라며 "그날은 특별히 무언가 논의하는 자리는 아니었고 박 시장은 '서울판 그린뉴딜 정책'을 선언한 이후라 의욕적으로 그와 관련된 발언을 했다"고 회고했다. 박 시장은 만찬 모임이 있던 날 오전에 서울을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0)' 도시로 만드는 계획을 발표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전기·수소차로 차량을 바꿔나가겠다는 것으로 오는 2022년까지 2조6000억원을 투자한다고 했었다.

만찬 자리에 있었다는 한 인사는 "2시간 정도 만에 모임을 마칠 때 웃으며 '다음에 다시 보자' 하고 헤어졌다"며 "박 시장이 수행원과 함께 귀가한 모습을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고 전했다.

한편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러지고 있는 박 시장의 장례식은 13일 오전 7시 30분 서울대병원에서 발인 후 서울시청으로 이동, 오전 8시 30분부터 서울시청사 8층 다목적홀에서 100여명의 제한된 인원만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을 진행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바로잡습니다

인터넷 중앙일보가 지난 7월 13일 보도한 「“내년 1월엔 내가 자리 만들게요” 박원순의 마지막 만찬 약속」 제하의 기사에서 박원순 전 시장이 민족문제연구소에 현재 가치로 30억원 가까이 되는 돈을 기부했다는 한 구청장의 발언을 인용했습니다. 그러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기부한 곳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아님이 확인되어 이를 바로잡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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