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로 백신을 만들 수 있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이 한창인 가운데, 식물을 기반으로 하는 ‘그린 바이오’ 기술이 바이러스를 막을 구원 투수로 참전했다. 국내외 기업이 잇따라 관련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미사이언스는 바이오벤처 기업인 바이오앱과 함께 식물 기반 단백질로 만든 코로나19 백신 후보 물질이 동물실험에서 효능을 보였다고 9일 밝혔다. 마우스(쥐), 기니피그 등에 후보물질을 주입한 결과 높은 항체 반응을 유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오앱은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무력화할 수 있는 중화항체 분석을 준비 중이다.
영국의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와 캐나다의 식물 유래 백신 개발기업 메디카고도 식물 백신을 개발 중이다. 한미사이언스와 바이오앱이 공동 개발 중인 식물 유래 바이러스유사입자(VLP)와 같은 백신 형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VLP는 나노미터 크기의 작은 입자로, 바이러스와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체내에 투입되면 바이러스와 같이 면역 반응을 일으키지만 유전물질이 없어 인체에 해로운 감염 증세는 나타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식물 백신을 개발중인 기업들은 식물에서 VLP를 얻는다. 메디카고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자 정보를 얻은 지 20여일만인 지난달 중순 VLP를 성공적으로 생산해 냈다. 바이오앱도 VLP를 식물에서 생산하는 플랫폼 기술을 개발해 약물 전달체, 백신, 치료제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보건 당국과 협의해 늦어도 8월 쯤 임상 실험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달걀이나 동물세포 대신 식물 이용
백신은 독성을 없앤 바이러스나 일부 단백질, 또는 유전자를 인체에 주입해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원리다. 보통 달걀이나 동물세포 등에서 바이러스를 키워 백신으로 만든다. 하지만 식물 백신의 경우 달걀이나 동물세포 대신 식물을 이용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전자를 식물에 주입하는 것이다. 나중에 식물을 수확해 정제하면 백신으로 쓸 바이러스의 단백질을 얻을 수 있다. 이 때 단백질을 효율적으로 분리하고 정제해 얼만큼의 유용 단백질을 얻을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된다. 해당 기업들은 대량의 유용 단백질을 식물에서 생산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식물 백신은 백신 제작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시켜 바이러스 변종에 빠른 대처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계란을 이용할 경우 약 6개월이 걸리던 백신개발 과정을 식물을 활용하면 6주 정도로 단축시킬 수 있다는게 업체들의 주장이다.
에볼라 유행 때 활약한 치료제 'Z맵'도 식물에서
전염병에서 식물의 역할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건 2014년 에볼라 유행 때 치료제 ‘Z맵(ZMapp)’이 등장하면서다. Z맵은 에볼라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세 가지 종류의 항체를 합성한 ‘칵테일 치료제’인데, 이들 모두가 담뱃잎에서 생산됐다. Z맵은 질병과 싸움에서 식물이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다.
Z맵 개발에 공동으로 참여했던 영국 담배업체인 브리티시아메리칸타바코(BAT)의 자회사 켄터키 바이오프로세싱(KBP)은 이번에도 담뱃잎을 이용해 바이러스에 맞서고 있다. 지난 5월 마우스 실험에서 효능을 확인하고 조만간 임상시험에 들어갈 계획이다. BAT는 정부 허가를 받으면 매주 100만~300만명 접종분을 담뱃잎에서 생산할 수 있다고 밝혔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