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큐어 칠해도 몰라"…'줌'이 美남성들을 화장대로 불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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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성 화장품 브랜드인 스트릭스의 유튜브 화장 강의. [유튜브 캡처]

미국 남성 화장품 브랜드인 스트릭스의 유튜브 화장 강의. [유튜브 캡처]

남자의, 남자를 위한, 남자에 의한 화장품이 북미 시장에서 뜨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 속 비대면 근무가 늘면서 화상을 통한 업무 등이 늘어난 탓이다. 남성 화장품 시장세가 무서운 이유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남성 화장품 시장이 93억 달러(약 11조1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미국 최대 드럭스토어 체인인 CVS는 이달 초 약 2000개의 매장에 남성 화장품 섹션을 따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이라면 유력 편의점이 체인점마다 남성 화장품 코너를 따로 만들겠다고 한 격이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남성 화장품 시장이 블루오션으로 인정 받았다는 의미가 있다고 풀이했다.

CVS는 철저한 시장 분석을 거친 뒤 이런 결정을 내렸다.  CVS는 “남성의 외모에 대한 관심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며 “CVS의 화장품 섹션에서 이제 남성은 제일 중요한 고객”이라는 요지의 보도자료를 냈다.

설문업체인 모닝컨설트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만 45세 이하의 미국 남성 세 명 중 한 명은 화장을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30대 이하는 그 비율이 더 높았다.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60%가 화장을 해보고 싶어했다.

미국의 남성 전용 화장품 브랜드 스트릭스의 '스타터 세트.' [홈페이지 캡처]

미국의 남성 전용 화장품 브랜드 스트릭스의 '스타터 세트.' [홈페이지 캡처]

그런데, 왜 지금일까. 답은 코로나19에서 찾을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줌(Zoom) 등 화상을 통한 업무 및 학습 진행이 늘어나면서, 모니터에 나오는 자신의 얼굴에 더 신경을 쓰게 됐다는 것이다.

또한 비대면 접촉이 늘면서 “남자가 뭘 외모를 가꾸냐”는 타박에서도 자유로워졌다는 이유도 있다. 애틀랜타 주의 남자 법대생인 맥스 벨로볼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매니큐어를 칠하던, 얼굴에 뭘 바르던 줌 너머의 사람들은 알 수 없지 않냐”며 “화장에 대한 남성의 관심은 줌 덕분”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이젠 일상이 돼버린 줌 화상회의. AP=연합뉴스

코로나19로 이젠 일상이 돼버린 줌 화상회의. AP=연합뉴스

샤넬 등 명품 업체에서 그루밍족(외모 가꾸기에 관심이 많은 남성)을 겨냥한 남성 화장품 라인을 판매해왔다. 하지만 최근의 분위기가 다르게 보이는 것은 특정한 계층이 아닌 일반 미국인 남성 사이에 화장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성장세에 힘입어 남성 화장품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브랜드도 생겼다. 블룸버그가 주목한 스트릭스(Stryx)라는 브랜드다. 제품 가격도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스트릭스의 창업자는 25세의 밀레니얼인 데비르 카한이다. 카한은 블룸버그에 “결혼식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글쎄 뾰루지가 났더라”며 “어떻게든 감춰보고 싶다는 생각에 남성 화장품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카한은 직접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뾰루지와 잡티 등을 가려주는 컨실러부터 남성을 위한 세안제인 클렌징폼 등을 시연한다. 그의 홈페이지엔 “가장 잘생긴 당신을 찾아보세요”라던지 “이렇게 쉽게 잡티를 지울 수 있는데, 고민은 왜 해?”라는 광고 문구가 있다.

마케팅 전문가인 벤 파르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남성 화장품은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하는 시장”이라며 “밀레니얼 세대는 ‘화장하는 남자’에 대한 거부감도 없기에 앞으로 성장할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한국의 2007년 남성 화장품 선전. [중앙포토]

한국의 2007년 남성 화장품 선전. [중앙포토]

평범한 남성으로 화장에 빠진 올해 24세의 환경운동가 액셀 게츠는 블룸버그에 “여성용 로션을 한 번 발라봤는데 피부가 천사처럼 되더라”며 “또래 남자들도 ‘화장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들 다 한다”고 말했다.

이쯤에서 화장을 하는 남성은 특정 성적 취향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다면, 게츠의 다음 말을 주목하시길. 그는 블룸버그에 “모든 종류의 남자들이 사실은 다 화장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이성에 끌리는 스트레이트 남성이건, 동성 등에 끌리는 LGBTQ이건 외모를 가꾸는 건 남성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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