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근무 지속에 시큰둥한 회사…"휴가로 여기는 직원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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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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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정보기술(IT) 회사에서 콘텐트 기획 업무를 하는 A 대리. 그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을 부리던 3월 재택근무를 경험했다. A 대리가 가장 만족한 건 하루 2시간씩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사라진 점이다. 그는 또“회사에 모여서 일할 땐 직원들끼리 모여 ‘커피 타임’을 하면서 불필요한 얘기를 하느라 시간을 많이 쓰곤 했다”며 “재택근무를 하면서 잡담이 줄고 업무에 꼭 필요한 내용만 의사소통할 수 있어서 업무 집중도가 올랐다”고 말했다.

#한 자동차부품회사 B 인사팀장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현재 우리회사 사정에선 원격근무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B 팀장은 “사업의 핵심인 생산과 영업이 모두 현장 중심이어서 우리에겐 원격근무가 맞지 않는다”며 “실시간 현장대응이 중요하기 때문에, 사무직원까지 유기적이고 신속한 대응을 하려면 출퇴근 근무가 적절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앞으로 원격근무가 우리 같은 제조업에도 가능한 시대가 올 수는 있다”며 “그러기 위해선 사업 특성에 맞는 원격 소통 인프라가 완전히 갖춰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2월 원격근무 당시 네이버(왼쪽)와 카카오 사옥 모습. 뉴스1

2월 원격근무 당시 네이버(왼쪽)와 카카오 사옥 모습. 뉴스1

코로나19를 계기로 경험했던 원격근무 도입에 대한 직원과 회사 측의 의견이 다르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300여개 기업 입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해 30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원격근무에 대한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았다’는 응답이 82.9%로 나타났다.

하지만 원격 근무를 지속할 계획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엔 70.8%가 “전혀 없다”고 답했다. ‘원격근무 도입을 검토 중’(21.5%)이라거나 ‘현재 활용 중이며 향후에도 지속할 것’(7.7%)이라는 응답은 이보다 적었다. 원격근무 시행에 따른 업무 효율성이 ‘높아졌다’(27.5%)라거나 ‘이전과 비슷하다’(56.1%)는 응답이 다수였지만, 지속할 뜻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왜 이 같은 반응이 나온 걸까. 대한상의는 “일시적 시행은 별문제 없어 보였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존 업무 방식과 불협화음을 야기할 수 있다고 회사들이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제약업체의 D 인사팀장은 “본격적으로 업무 방식을 바꾸려면 기술적인 문제 외에도 어떻게 업무를 기획하고 진행할지, 근태관리나 성과평가는 어떤 방식으로 할지 전면적인 재정립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D 인사팀장은 “재택근무를 휴가처럼 생각하는 직원도 있고, 화상회의 등에 필요한 IT 기기에 능숙하지 않은 간부, 변화를 꺼리는 리더 등 일부 구성원들의 사고방식도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인사담당자들은 원격근무가 보편화 되기 위한 1순위 과제로 ‘보고ㆍ지시 효율화’(51.8%)를 꼽았다. 이밖에 ‘임직원 인식ㆍ역량 교육’(28.1%), ‘보안시스템 구축’(23.8%), ‘성과평가ㆍ보상제도 재구축’(15.3%), ‘팀워크 제고 방안 마련’(9.5%) 등의 의견이 뒤를 이었다.

박준 대한상의 기업문화팀장은 “IT 기술의 발달과 구성원들의 인식변화를 고려할 때 비대면 업무방식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며 “코로나19가 기업의 변화를 촉진하고 있는 만큼, 우리 기업들도 업무방식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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