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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기흥의 과학판도라상자

크릴오일은 펭귄에게 돌려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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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기흥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김기흥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

오랜만에 강의실에 들어가 보았다. 왁자지껄하던 학생들의 모습은 먼 과거의 일처럼 아득한 기억이 되었다. 코로나19의 확산은 우리의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익숙하고 당연했던 일상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크릴새우 개체수 80% 급감 #남획이 남극 생태재난 초래 #크릴 줄면 온난화도 악영향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인간의 시간은 갑자기 멈추었다. 대신 우리는 지구의 시간이 흐르는 것을 목도했다. 우리를 그리도 괴롭히던 황사는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고 대신 화창한 푸른 하늘이 찾아왔다. 사람이 사라진 거리를 산양들이 내려와 유유자적하며 정원의 풀을 뜯는 모습은 초현실적이었다.

이토록 초현실적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안락과 풍요를 탐닉한다. 아마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요즈음 홈쇼핑 채널을 보고 있으면 빠지지 않는 아이템이 크릴오일이다. 2018년 처음 홈쇼핑에 소개되면서 시작된 크릴오일의 대박행진으로 시장규모가 3000억원에 이를 정도로 폭풍 성장하고 있다. 크릴오일은 우리가 찾아낸 새로운 소비의 아이템이 되었다. 크릴오일은 남극해에 서식하고 있는 크릴새우에서 추출한다.

우리 손가락 크기인 6센티 정도까지 자라는 이 자그마한 크릴새우는 남극 생태계에 있어서 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크릴새우는 흰수염고래와 물개, 바닷새 그리고 펭귄의 주식이다. 크릴새우는 그 생김새가 아주 작은 치어모양의 새우처럼 생겼기 때문에 크릴새우라고 불리지만 동물성 플랑크톤에 가깝다. 그래서 크릴이라 부르는 것이 정확한 이름이다.

과학판도라상자 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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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남극에만 서식하는 고래와 펭귄의 먹이였던 크릴에 갑자기 인간이 주목한 이유는 바로 오메가3 지방산 때문이었다. 뇌세포의 구성성분으로 그 동안 건강보조제로 인기가 높았던 이 오메가3 지방산이 크릴에 풍부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드디어 인간도 고래와 펭귄의 먹이를 나누기 시작했다. 더구나 그 동안 오메가3 지방산을 주로 추출해온 연어와 참치가 수은을 함유한다는 뉴스가 알려지면서 크릴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여기에 항산화성분과 다이어트 효과라는 이미지가 덧칠되면서 크릴오일은 웰빙의 필수품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남극해에서는 크릴의 비극에 관한 경고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크릴의 개체수가 1970년대와 비교해서 80% 정도 감소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수온상승으로 크릴이 더 이상 서식하기 어렵게 되었다. 또한 엄청난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는 무분별한 어획으로 개체수가 급감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크릴이 건강식품으로 사용될 뿐 아니라 유럽에서는 닭과 소를 키우기 위한 사료로 사용된다.

사실 크릴은 지구온난화의 최대피해자이기도 하지만 온난화를 막을 수 있는 비장의 무기이기도 하다. 크릴은 해수면의 탄소를 흡수하여 배설물로 깊은 심해에 떨어뜨려 탄소가 매장되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 과정에서 매년 2300만t의 탄소가 해저에 매장된다. 또한 크릴은 남극생태계를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생명줄이다. 남극해의 해양생물은 모두 크릴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크릴의 개체수 감소는 결국 고래와 물개 그리고 펭귄의 감소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인간의 무분별한 남획과 지구온난화는 남극해 생태계의 기초를 붕괴시키고 있다. 물론 무분별한 어획을 규제하기 위한 국제적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1982년에 합의된 ‘남극해양생물자원 보존협약(CCAMILR)’은 남극해양 생물자원, 특히 크릴자원의 남획을 방지하기 위한 조항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크릴은 사라지고 있다. 최근 좀 더 과감하게 남극해를 보존지역을 설정하여 조업자체를 금지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우리는 거대한 전환의 한 복판에 서 있다. 이 대전환을 초래한 장본인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임이 확실해지고 있다. 성장과 풍요를 위해 마른 걸레를 짜내듯이 자원을 마구잡이로 사용하면서 지구는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낸다. 크릴오일 알약에 담긴 경고음에 귀기울일 시간이다. 인간의 시간이 잠시 멈추면서 일어난 놀라운 변화는 인간행동의 변화가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 힘을 보여준다. 펭귄의 것은 펭귄에게 과감하게 돌려주자. 자원에 대한 무한한 탐닉과 착취는 결국 비극적 재난으로 되돌아온다.

김기흥 포스텍 교수·인문사회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