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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삼국유사' 동네이름 변경 붐···방광마을·대가리 선택은?

중앙일보

입력

경북 군위군 고로면사무소. 고로라는 동네 이름이 크게 쓰여져 있다. [사진 군위군]

경북 군위군 고로면사무소. 고로라는 동네 이름이 크게 쓰여져 있다. [사진 군위군]

경북 군위군 고로면은 옛 고(古)에 늙을 로(老)자를 쓴다. 단순히 '오래된 곳이고, 늙었다'는 고로(古老)다. 거기에 행정구역인 면(面)을 더한 게 동네 이름이 가진 뜻의 전부. 1914년 일제시대 행정구역 개편 때부터 쓰인 이름이다. 주민들은 "지명이 좋지 않다. 일제 잔재다. 늙고 오래된 사람들이 사는 곳을 연상시킨다"며 동네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군위군 고로면을 삼국유사면으로 #일제 잔재, 인각사 배경에서 따와 #늙었다는 뜻만 있어 어감 이상해

 군위군은 23일 현재의 고로면을 '삼국유사면(三國遺事面)'으로 변경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군은 지난 15일부터 19일까지 주민 852가구를 대상으로 찬·반 의견조사를 진행했다. 총 486가구가 참여해 찬성 407표(83.7%)로 참여자 과반이 삼국유사면으로 이름을 바꾸는 데 찬성했다. 삼국유사면이란 새 이름은 고로면에 삼국유사를 집필한 사찰인 '인각사'가 있다는 점에서 따왔다. 군위군 관계자는 "내년 1월부터 공식적으로 고로면을 삼국유사면으로 사용키 위해 조례 개정, 시설물 이름 변경 등 관련 행정 절차를 진행 중이다"고 설명했다.

고려 충렬왕때 일연대선사가 삼국유사를 집대성한 경북 군위군 인각사 대웅전 전경. [중앙포토]

고려 충렬왕때 일연대선사가 삼국유사를 집대성한 경북 군위군 인각사 대웅전 전경. [중앙포토]

 도나 시ㆍ군 단위 지자체의 명칭은 지방자치법에 따라 국회 동의를 얻어야 받아야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지자체에 속한 읍ㆍ면 같은 행정구역 명칭은 자체 조례만 만들면 바꿀 수 있다. 단, 주민 과반수가 투표해 3분 2 이상 찬성해야 가능하다. 고로면이란 동네 이름 변경은 이 기준에 충족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이런 동네 이름 바꾸기는 고로면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같은 경북에 있는 청송군은 부동면을 ‘주왕산면’으로 바꿨다. 부동면은 1914년 일제시대 행정구역 개편 때부터 쓰인 이름. 마을 부(府)에 동쪽 동(東). 방위에 기초해 만든 이름이다. 이에 청송군은 일제 잔재를 없애고, 지역 대표 관광지인 주왕산을 담은 새 이름으로 개명했다. 부동면은 기암괴석이 자리 잡은 국립공원 주왕산에 속한 마을이다.

 경북 상주시도 지난해 ‘사벌(沙伐)’면에 국(國)자를 더해 ‘사벌국’면으로 개명했다. 과거 사벌면 일대가 소국인 ‘사벌국’이었다는 점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면사무소 한 공무원은 “발음상으로도 ‘사벌’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사벌국’이라고 하는 게 좋아 보이지 않느냐. 사벌국면이라고 하면 외지인들이 사벌을 기억하기도 수월할 것이다”고 했다.

 전남 담양군도 1914년부터 방위에 기초해 사용하던 ‘남면’을 가사문학의 산실이라는 지역 특성을 반영, ‘가사문학면’으로 개명했다. 이 지역엔 『성산별곡』등 18편의 가사 문학 작품이 전해진다.

대가야왕릉전시관.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에 위치해 있다. [사진 고령군. 중앙포토]

대가야왕릉전시관.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에 위치해 있다. [사진 고령군. 중앙포토]

 경북 고령군에 있는 고령읍도 대가야읍으로 동네 이름을 2015년에 벌써 바꿨다. 고령읍은 높을 고(高)에 신령 령(靈)자를 쓴다. 발음만 놓고 보면 나이가 많다는 고령(高齡)과 같다. 대가야읍은 고령군 일대가 1600여년 전 고구려·백제·신라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대가야의 수도였다는 점을 강조한 이름이다.

호미곶 상생의 손에 앉은 갈매기. 호미곶면의 대표적인 조형물이다. 연합뉴스

호미곶 상생의 손에 앉은 갈매기. 호미곶면의 대표적인 조형물이다. 연합뉴스

 이밖에 강원도 영월군의 무릉도원면(옛 수주면), 강원도 평창군의 대관령면(옛 도암면), 포항의 호미곶면(예전 대보면),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옛 하동면) 등도 있다.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옛 서면), 울진군 매화면(옛 원남면) 등은 지역 대표 관광자원을 동네 이름에 담은 사례다.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색적인 이름, 옛것 그대로를 고수하는 마을도 있다. 전남 구례군 광의면의 방광(放光)마을과 크게(大) 아름답다(佳)는 의미를 지닌 전북 순창군 풍산면 ‘대가(大佳)리’ 등이 대표적이다.

안동=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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