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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에버라드 칼럼

북한에 리더십 혼란까지 있다면 정말 예측불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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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지난 6일과 7일, 북한에서 정치국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노동신문에서 세 편의 논평을 게재했다. 작년 10월 23일 이후 북한에서 처음 발표하는 외교 논평이다. 긴 침묵은 북한에서 장기간의 내부 논쟁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김정은 비료공장 행사 뒤 두문불출 #김여정의 급부상도 수상한 움직임

북한은 한국을 ‘적’으로 규정하면서 공조 포기를 선언했다. 불만이 대북전단 때문이라면 한국 여당이 전단 살포 금지법 제정을 추진했을 때 신랄한 비판을 멈췄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일시적인 분노를 표출한 것이 아니라 대남 전략을 변경했음을 의미한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력도 거의 포기한 듯하다. 북한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비난하지는 않았으나, 이선권 외무상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2주년 담화에서 “조·미 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은 오늘날 악화 상승이라는 절망으로 바뀌었다. 나라의 핵전쟁 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북한 외교 정책은 안보와 경제라는 두 가지 핵심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안보에 있어 북한은 더는 외교와 협력에 의존하지 않고 군사력 강화에 힘쓸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경제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코로나19 확산 전에도 북한 경제는 정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국경 폐쇄는 유엔 제재보다 더욱 큰 타격을 안겼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인 경제 침체 때문에 이미 빈약한 북한 경제는 더욱 악화하여 정권의 합법성과 안정성까지 위협하게 됐다.

북한 정권은 중국에 한층 더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도 코로나19 초기 대응 부실에 대한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 유일한 공식 동맹국과의 관계 강화를 환영할 것이다. 북한 경제를 지원할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북한에는 중국이 유일한 희망이다.

북한의 변화는 외교 정책에 국한되지 않는다. 필자는 최근 칼럼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기이한 잠적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김 위원장의 행보는 여전히 이상하다. 김 위원장은 경제·군사 시설을 자주 방문해 즉석에서 지침을 내리곤 했는데, 5월 1일 비료공장 준공식을 제외하고는 이 같은 활동을 중단했다. 더욱 이상한 점은 6일과 7일 정치국 회의에서 비료 생산 부족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비료공장이 실제로 가동된다면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정상적으로 공장이 운영되고 있다면 비료 부족이 거의 해결됐다고 자랑하는 게 북한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공장 준공식은 김 위원장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외부에 보여주는 위장 행사였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변화도 있다. 최용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은 4월 11일 이후 두문불출했고, 반면 박봉주 전 내각 총리는 활발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 현상이 혹시 김정은 위원장이 정권 초기에 추진하다가 포기했던 경제 개혁으로의 회귀를 알리는 신호일 수 있다. 박봉주는 경제 개혁을 지지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중국도 북한에 오랫동안 경제개혁 추진을 압박해 왔다.

가장 주목할 점은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제1부부장의 급부상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건강 문제 또는 정치적 사유로 갑작스럽게 자리를 비울 경우 ‘백두혈통’ 중 한 사람이 언제든 공석을 메울 수 있도록 조처를 하고 있는 것 아닐까? 김정남은 사망했고, 김 위원장의 형 김정철은 지도자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남은 카드는 여동생인 김여정과 이복 누이 김설송인데, 김설송의 경우 김여정과 달리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고 김 위원장 옆에서 사진을 찍힌 일이 거의 없다.

북한은 까다로운 상대다. 경제적 쇠퇴와 더불어 리더십 혼란까지 있다면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위험하다. 필자는 김여정이 한국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경고한 직후에 이 글을 쓰고 있다. 다음 달의 칼럼에서 군사적 충돌 사태에 대해 논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란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