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우려에 보건국장 말리는데···트럼프 "선거유세 하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코로나19 퍼진다. 제발 오지마라.” (미 오클라호마주 보건국장)
“선거유세를 방해하려는 가짜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거유세 재개를 놓고 유세가 열릴 오클라호마주와 트럼프 대통령 측이 갈등을 빚고 있다. 주 당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에 ‘유세 연기’를 요청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걱정하지 말라”며 천하 태평한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 10일 미 뉴햄프셔주 맨체스터 선거 유세에서 관중의 응원에 손짓으로 호응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 10일 미 뉴햄프셔주 맨체스터 선거 유세에서 관중의 응원에 손짓으로 호응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1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오클라호마주 털사 카운티 당국은 20일 실내체육관에서 열릴 유세를 앞두고 트럼프 캠프 측에 “재고해달라”고 호소했다. 유세장이 코로나19 바이러스 배양접시가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브루스 다트 털사카운티 보건당국은 “유세가 예정대로 열리면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이라며 “대통령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케빈 스팃 오클라호마 주지사도 유세 참석 예정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유세를 늦출 수 없다면 적어도 유세장을 야외로 옮겨 달라”고 청원을 넣었고, 또 다른 관계자는 유세장 인근에서 반대시위가 일어날 가능성까지 경고했다.

NYT에 따르면 오클라호마주는 최근 코로나19 확진자 수와 입원환자 수가 급증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다른 주에 비해 감염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지만 지난 일주일 사이 누적확진자 수가 188명에서 532명으로 급증했다. 일일 신규확진자도 89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3월 2일 미 뉴욕 샬럿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3월 2일 미 뉴욕 샬럿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보건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유세를 강행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대규모 군중이 밀폐된 실내에 모일 때 쉽게 전파되는 데 유세장이 그 조건을 다 갖췄다는 것이다. 유세 중 다 같이 함성을 지르고, 침방울로 오염된 공기에 장시간 노출된다는 점도 위험 요인이다. 윌러엄 샤프너 밴더빌트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누군가는 유세장에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가져올 것”이라며 “바이러스는 정치적 이벤트를 봐주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1월 9일 오하이오 톨레도 헌팅턴센터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 선거 유세 현장. [AFP=연합뉴스]

1월 9일 오하이오 톨레도 헌팅턴센터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 선거 유세 현장. [AFP=연합뉴스]

주 당국의 호소와 보건전문가의 경고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유세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유세 시작 전 참석자들의 체온을 재고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보급하는 등 방역 수칙을 지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유세 재개를 앞두고 들뜬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트윗에서 “털사에서 열리는 유세에 거의 100만명이 신청했다”고 자랑했다. 또 유세장에서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높다는 지적에는 "유세를 진행하려는 우리를 음해하려는 가짜뉴스"라며 "그렇게는 안 될 것"이라고 받아쳤다. 그러면서 미 전역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일어나고 있지만 코로나19 확산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캠프 측은 온라인으로 받고 있는 참가 신청서에 "유세에 참여했다가 코로나19에 걸려도 주최 측을 고소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이에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대한 책임을 참가자에게 떠넘긴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일각에선 최근 각종 지지율 조사 결과가 유세 강행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뒤진다는 결과가 나오자 조급해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형 선거 유세를 계기로 지지층을 결집해 기선 제압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관련기사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