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만에 군중 유세 재개하는 트럼프, 코로나 '핫스팟'만 골라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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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 백악관에서 흑인 지지자들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는 오는 19일 오클라호마주에서 그동안 중단했던 선거 유세를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EPA=연하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 백악관에서 흑인 지지자들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는 오는 19일 오클라호마주에서 그동안 중단했던 선거 유세를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EPA=연하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중단한 선거 유세를 다음 주에 재개한다. 지난 3월 이후 석 달여만이다.

트럼프, 오클라호마서 석달만 유세 재개 #이후 플로리다·애리조나 등 경합주로 #5개 주 모두 최근 코로나19 급증 #거리 두기, 마스크 거부해 당국 골치

그런데 유세를 열겠다고 밝힌 주(州)에서 코로나19 확진과 입원환자 수가 증가하고 있어서 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미국 코로나19 환자 수는 10일(현지시간) 현재 200만 명을 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집회를 다시 시작할 것"이라며 오는 19일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관중을 직접 만나는 유세를 열겠다고 밝혔다. 그는 플로리다와 텍사스, 애리조나, 노스캐롤라이나에도 가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거론한 5개 주 가운데 오클라호마를 뺀 텍사스, 애리조나, 노스캐롤라이나, 플로리다 4개 주는 10일 기준으로 하루 환자 수(최근 7일 평균치)가 코로나19 발병 이후 가장 많았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뉴욕타임스(NYT) 집계에 따르면 5개 주 모두 2주 전보다 환자 수가 확 늘었다. 오클라호마주 털사 카운티는 지난달 26일 인구 10만 명당 환자 수가 3.2명에서 9일 4.5명으로 늘었다.

플로리다주 드소토 카운티는 2주 전 17.3명에서 9일 38.9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블레이던 카운티는 5.5명에서 30.1명으로 6배 증가했다.

NYT가 최근 2주 새 환자 수가 급증한 곳을 집계한 '핫스팟' 톱10 가운데 텍사스주 카운티 3곳이 포함됐다. 예컨대 텍사스주 존스 카운티는 총 확진자가 636명인데, 최근 2주 새 새로 확진된 환자가 501명이다. 두 번째 유행은커녕 첫 번째 유행이 시작된 상황이다.

미국 애리조나주는 지난달 15일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조치를 조기에 해제했다. 이후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했다. 애리조나주 한 병원 밖에 앰뷸런스가 서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애리조나주는 지난달 15일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조치를 조기에 해제했다. 이후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했다. 애리조나주 한 병원 밖에 앰뷸런스가 서 있다. [AP=연합뉴스]

늦깎이 핫스팟의 공통점은 코로나19 봉쇄를 서둘러 해제하고, 경제 활동 조기 정상화를 추진했다는 점이다. 애리조나주는 중환자실 입원환자 수가 340명으로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5월 15일 전문가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택대기 명령을 풀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애리조나 사례는 불길한 징조일 수 있다"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 2주 만에 10여 개 주에서 환자 수가 크게 늘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핫스팟을 유세 지역으로 선택한 이유는 경합 주 민심을 잡기 위해서로 보인다. 오클라호마를 제외한 4개 주는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모두 이긴 곳이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와 지지율 차이가 오차범위 내여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 플로리다주에서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바이든이 3%포인트 앞섰다. (CNBC 6월 3일 발표)

애리조나주에서는 트럼프가 1%포인트 우세하다. 노스캐롤라이나주는 CNBC 조사에서는 바이든이 1%포인트, 시비타스 조사에서는 트럼프가 3%포인트 앞섰다.

공교롭게도 이들 경합 주에서 코로나19가 빠르게 퍼지고 있지만 선거가 5개월 채 안 남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핫스팟에서 대규모 집회를 기획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마스크 쓰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유권자에게 코로나19가 통제되고 일상을 되찾았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기 때문이다.

미국 모든 주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완화하고, 경제 활동을 재개한 만큼 선거 유세도 정상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흑인 사망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반대 집회를 가리켜 수만 명이 참석하는 시위는 되는데 유세는 왜 못하느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해변이 10일 다시 문을 열었다. 코로나19로 폐쇄된지 석 달 여만이다.[AFP=연합뉴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해변이 10일 다시 문을 열었다. 코로나19로 폐쇄된지 석 달 여만이다.[AFP=연합뉴스]

코로나19 이전 트럼프 유세는 대형 컨벤션센터나 스타디움에서 수 만명 관중이 참여하는 행사로 꾸며졌다. 지금은 보건당국이 모임을 자제하라고 권고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행사 규모가 아주 클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은 관중 안전을 최대한 확보하겠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방침은 제시하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존스홉킨스대 집계에 따르면 미국 코로나19 환자 수는 이날 200만 명을 넘었고, 이 가운데 11만3000명이 숨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세를 재개하는 6월 19일은 노예해방 기념일인 준틴스 데이(Juneteenth Day)다. 오클라호마주 털사는 1921년 백인 폭도들이 흑인 수십명을 살해한 미 역사상 최악의 인종차별 폭력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흑인 생명권 지지 시위를 의식해 이날 이곳으로 유세 일정을 잡은 것인지는 불분명하다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전했다. 흑인 유권자를 끌어안기 위해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인지 아닌지는 이날 연설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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