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는 멀고 中은 쫓아오는데···韓선 삼성-SK하이닉스 각자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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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의회는 지난 11일 반도체 공장 건설과 R&D(연구·개발) 등에 250억 달러(약 30조원)를 지원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존 코닝 공화당 상원의원과 마크 워너 민주당 상원의원이 공동 발의했다. 한마디로 초당적 법안이다. 하원에서도 곧 유사한 법안이 발의될 예정이다.

# 중국 국가펀드인 ‘국가반도체산업투자기금(CICF)’과 상하이 정부가 주도하는 ’상하이집적회로기금‘은 지난달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업체인 SMIC에 156억 위안(약 2조6600억원)의 투자를 결정했다. 미국의 제재로 화웨이가 대만 TSMC로부터 통신칩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자 급히 꺼내든 조치다.

전경련, "한국 반도체 정책적 지원 부족"  

미국과 중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을 키우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지만, 한국은 정책적 지원이 부족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미국과는 점유율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중국에는 쫓기는 상황에서 기업에만 투자를 요구할 게 아니라 국가 차원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15일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 지형 변화와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지난 10년간 세계 반도체 시장을 분석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10년 동안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45~51%의 점유율을 꾸준히 유지했다. 한국은 10년 전 14%에서 2018년 24%까지 증가했지만, 지난해에는 19%로 하락했다.

중국의 점유율은 2012년까지만 해도 2% 미만이었지만 지난해에는 5%까지 늘었다. 특히 한국과 중국의 반도체 기술 격차가 점점 좁혀지고 있다. 전경련은 시장조사업체인 IHS마킷과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의 자료를 인용, "한·중 간 반도체 공정장비 기술 격차가 지난 10년간 1.9년에서 1.2년으로 줄고, 시스템 반도체 분야는 0.8년에서 0.6년으로 좁혀졌다"고 밝혔다.

〈자료: OECD, 전국경제인연합회〉

〈자료: OECD, 전국경제인연합회〉

중국도 미국도 반도체 업체 지원 경쟁  

전경련은 정부의 지원 차이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4~18년 주요 글로벌 반도체 업체 중 매출 대비 정부지원금 비중이 가장 큰 곳은 중국 SMIC로 6.6%에 달한다. 중국 화홍반도체는 5%, 칭화유니 4%다. 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0.8%, 0.6%에 그쳤다. 미국 마이크론(3.8%)과 퀄컴(3%), 인텔(2.2%)보다도 낮다.

이소원 전경련 국제협력팀장은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의 굴기는 중앙정부 차원의 막대한 지원이 뒷받침된 결과”라며 “세계 시장 선두에 있는 미국 또한 주요 반도체 기업에 세제 혜택과 상당한 수준의 R&D 투자비를 지원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국산화 가속, 미국은 의회가 지원법 발의  

반도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 산업 육성에도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지난 5년간 반도체 분야에 약 300조원을 투자한 중국은 미국의 견제에 맞서 반도체 국산화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부연구위원은 “중국이 반도체 제조 장비를 폭발적으로 구입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구입 규모에서 처음으로 한국을 추월했다”며 “중국이 첨단 반도체의 국산화에 성공할 경우 한국 반도체 산업은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시장 경제를 중시하는 미국에서도 반도체 산업만큼은 예외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최근 정부와 의회에 370억 달러(약 46조원) 규모의 보조금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 SIA는 15일 발간한 '스파킹 이노베이션(Sparking Innovation)' 보고서에서 미 연방정부가 반도체 R&D에 1달러를 투자할 때마다 GDP(국내총생산)가 16.5달러 상승한다고 강조했다. 미 의회가 지난 11일 발의한 반도체 지원 법안 역시 SIA의 요청에 대한 화답이다.

"한국도 세제 혜택·R&D 지원 등 정책 뒷받침 시급"  

반도체 시장은 각 국가의 대표 선수 격인 몇몇 소수 정예 기업이 경쟁한다. 대규모 자금과 설비를 지속적으로 투입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특히 4차 혁명시대에는 반도체 패권이 경제 패권은 물론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 기업 간 경쟁에 중국이나 미국이 전략적으로 개입하는 이유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홀로 뛰고 있다는 게 전경련의 지적이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중국이 5년 전부터 반도체 굴기를 내걸고 국가 재원을 투입하면서 시장 내 공정한 경쟁을 중요시하던 미국조차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연방정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 건 놀라운 일"이라며 “세계 반도체 시장의 입지를 수성 입지를 수성하기 위해 한국도 R&D, 세제 혜택 지원 등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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