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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아빠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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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가영
이가영 기자 중앙일보
이가영 사회1팀 기자

이가영 사회1팀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소환이 이뤄졌던 지난달 마지막 금요일. 야근 당번이었던 나는 이 부회장이 언제 조사를 마치고 나올지 몰라 긴장하며 시간을 보냈다. 불금은커녕, 이 부회장을 응원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목청이 터져라 싸우는 소리를 듣다 밤 11시를 훌쩍 넘어 퇴근했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언제 잤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토요일 아침,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온몸이 천근만근이라는 게 이런 때 쓰는 말이구나 싶었다. 예약해놓은 운동을 쿨하게 포기했다. 아까운 마음도 컸지만 그날만은 침대를 벗어나는 게 고역처럼 느껴졌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는 것 아닐까. [일러스트=박소정][천안·아산]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는 것 아닐까. [일러스트=박소정][천안·아산]

문득, 주말이면 항상 잠만 자던 아빠가 생각났다. 일요일 아침이면 디즈니 만화영화를 보기 위해 나와 동생은 일찍부터 거실로 향했고,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나 엄마가 지은 맛있는 밥 냄새가 솔솔 풍길 때까지 아빠는 침대에 있었다. 나와 동생이 “아빠 점심 드세요”라는 말로 흔들어 깨워야 아빠는 겨우 눈을 뗐다. 그런 아빠가 마뜩잖았다. 주말이니 아빠엄마 손잡고 산으로 들로 놀러 나가고 싶은데 아빠는 언제나 피곤한 모습이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어린이가 소녀로 변해갈 무렵 아빠는 어딘가 어색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아빠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과는 별개로 뭔가 모를 벽이 있었다.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엔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건 아빠가 나와 어렸을 때 충분히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모든 건 아빠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덧 아빠의 모습을 따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평일에 열심히 일했으니 주말만큼은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을 때가 있다. 그냥 누워만 있고 싶어서 휴대전화를 보다가 손에 힘이 풀려 얼굴로 휴대전화를 받아내기도 한다. 잠시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지만, 가만히 누워서 아무 생각 안 할 때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이다. 심지어 내가 어렸을 때 아빠는 주 6일을 일하는 게 당연하던 시절을 보냈다. 지금도 주말은 쏜살같이 흘러가 아쉬운데 오롯이 쉴 수 있는 날이 일요일밖에 없다니. 아빠는 나에게 엄청나게 큰 어른이었고, 자식을 위해 당연히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마냥 그렇지도 않았을 듯하다. 지금의 내 나이였을 때쯤 아빠는 아빠가 됐다. 나는 아직도 “철 드는 건 너무 무겁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며 어떻게든 철들기를 피하고 있는데. 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이 된 아빠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싶다. 새벽까지 놀고도 다음날 아무렇지 않았던 때를 지나 ‘이제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아빠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어가는 건가 보다.

이가영 사회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