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look] 북한 대남공세는 대미도발 전초전…한국, 미국을 움직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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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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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대남 공세가 이틀이 멀다 하고 가속화하고 있다. 급기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13일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무너뜨릴 것이며, 행동권을 군에 맡겼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그간의 성과가 무너지고 군사 충돌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위성락이 본 남북관계 해법 #북 요구 들어주는 건 큰 의미 없어 #북·미 국면전환 있어야 상황 개선 #정부, 남북협력에 매달리지 말고 #트럼프·김정은 대화여건 조성해야

북한 군사행동 경고, 하노이 노딜서 잉태

그러나 냉정히 돌아보면 이런 행동은 예고된 것이다.  2018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측은 대남 관계를 단절해 왔다. 사실상 남북관계는 파국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제 북측이 대남 관계를 대적 관계로 다룬다고 선언하고 행동하기 시작함으로써 모든 것이 가시화됐을 뿐이다.

북한이 왜 이러는지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다. 그중 배격해야 할 해석부터 살펴보자. 우선 북한이 코로나19와 경제난에 따라 민심과 권력 기반에 문제가 생겨 이를 다잡기 위해 대외적으로 강수를 쓰고 군중 행사를 통해 적개심을 고취한다는 해석이 있다. 이렇게 해석하면 북한의 대남 겨냥점은 흐려진다. 그러면 북한의 경제나 코로나19 대처를 도와주면 된다는 식의 해법이 나오게 된다. 너무나 아전인수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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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대남 공세를 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남측에 분개하기 때문이다. 하노이 회담 언저리에서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행보에 대한 분노다. 북측은 남측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고, 미·북 사이에서 잘못된 처신을 했다고 본다. 그 결과 북측이 하노이에서 낭패를 보았다고 인식한다. 그러다가 이번 총선에서 태영호·지성호씨가 당선되고, 전단 살포가 방치되자 남측 정부의 탈북자 대처를 걸어 거친 공세를 취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북한의 행보는 대남 타격이 주목적이다. 경제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김정은 권력에 문제가 있다는 근거도 없다. 군중대회는 퇴로가 없다는 결기의 과시다. 군중대회는 코로나19가 심각하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북측은 남측을 응징해 남측으로부터 탈북자 규제, 합의 이행 등이 나오도록 견인하고, 남·남 갈등을 조장하려 한다. 한·미 이견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미국에 대해 북한의 단호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북한이 대남 공세를 하는 동안에도 북한이 예고한 대미 도발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러므로 북한의 대남 공세는 대미 도발의 전초전이기도 하다. 앞으로 북한은 공동연락사무소, 금강산 시설, 개성 시설, 남북 군사합의 조항 등을 넘나들면서 하나씩 무너뜨리는 공세를 이어갈 것이다. 북한은 한국에 괴로운 시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미국 대선 전 어느 시점에서 대미 도발을 할 것이다. 북한이 대미 도발을 하면 유엔 안보리 소집과 제재가 이어질 것이니 사태는 긴장으로 치달을 것이다. 한국의 운신 공간도 크게 제약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북한의 지속하는 공세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한다. 그간의 성과가 어느 정도 무너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우리가 괴로워할수록 북한은 더 강수로 나올 것이다. 그러니 정부도, 사회 전반도 의연해야 한다.

둘째, 대처 방안을 남북관계에서 찾으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이 남쪽을 응징하기로 작정한 이상, 북한의 요구 하나를 들어준다 해서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 상황 타개를 위해서는 미·북 간 국면 전환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북한의 대남 공세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

그동안의 사정을 돌이켜 보면 남북 접촉에는 여지가 거의 없었으나, 미·북 대화에는 틈이 보였었다. 지난해 말 북한은 대미 도발을 예고했으나, 6개월이 지나도록 실행을 미뤄 왔다. 지난 2~3월 중국과 미국의 코로나19 사태와 시진핑·트럼프의 정치적 곤경, 이어진 바이든의 부상이 북한으로 하여금 도발 시점과 강도를 고심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일 개연성이 있다. 북한으로서는 도발을 통해 트럼프를 담판으로 이끌 생각은 있으나, 자칫 바이든 좋은 일 시킬 것을 의식했을 법하다. 바이든과는 싱가포르 합의는 물론 정상회담 자체가 불가하기 때문이다.

정부, 북·미와 남북 아우르는 전술 필요

그때 우리가 나서 김여정이 담화에서 요구했던 ‘평형과 공정성을 보장’해 주는 방식으로 미국을 움직였다면 고심하는 김정은과 대선을 앞둔 트럼프 사이에서 미·북을 대좌시킬 여지는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 시기에 우리는 남북 협력 카드를 만지작거리느라 시간을 소비했다.

셋째, 그러니 이제라도 미·북을 대좌시켜 대미 도발을 지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대미 도발이 있으면 남북관계는 더 수렁에 빠진다. 이제 6월 중순이니 시기적으로나, 분위기상으로나 미·북 대화를 다시 붙일 여건은 좋지 않다. 그러나 북한이 대미 도발을 하기까지 기회의 창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다. 그전에 미국을 움직여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 수 있다면 추가적 상황 악화는 막을 수 있다.

북한의 대남 공세는 분명 우리에게 악재다. 이에 대해 남북 차원의 대증적 대처에 치중할 필요는 없다. 북한이 미·북과 남북을 아우르는 전술을 구사하므로 우리의 대처도 미·북과 남북을 한 시야에 두는 가운데 나와야 한다.

◆위성락

외교통상부 북미국장, 주미공사,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거쳐 주러시아 대사를 역임했다. 2차 북핵 위기가 발발한 2003년 북미국장으로서 북핵 업무를 담당했고, 2009~2011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으로 북핵 문제를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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