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8급 여직원의 '300억 뒤통수'···동료들은 치 떨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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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시 수성동 전주지검 정읍지청 전경. 김준희 기자

전북 정읍시 수성동 전주지검 정읍지청 전경. 김준희 기자

"중간중간 돌려 막는 형태로 돈을 갚다 보니 (사기 행각이)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사건추적] #전주지검 정읍지청장 부속실 30대 실무관 #'300억 부동산 투자 사기' 혐의 구속기소 #주식 투자로 날려…16명 27~28억 못받아 #동료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분위기 #김우석 지청장 "신망 두터웠는데…속았다" #대검에 중징계 보고…파면 가능성 높아

 김우석 전주지검 정읍지청장은 지난 9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지인들에게 돈을 자주 빌렸다가 몇 달 만에 갚고, 다시 빌리는 식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부속실에서 근무하며 김 지청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던 전주지검 정읍지청 소속 8급 실무관 A씨(39·여)가 1년 넘게 지인들에게 수백억원대 사기를 칠 때까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것을 두고서다.

 전주지검은 지난달 22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사기)로 A씨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A씨는 지난해 3월부터 1년여간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며 지인들에게 부동산 투자금 명목으로 300억원가량을 받아 실제로는 주식에 투자한 혐의로 기소됐다. 투자금 대부분은 주식 투자로 날린 것으로 조사됐다. 김 지청장은 "구속기소 이후 대검에 A씨의 중징계를 의결해 달라는 의견을 달아 보고했다"며 "다음 주 대검에서 징계위를 열 예정인데, 파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A씨로부터 꼬박꼬박 들어오던 이자 등이 몇 달째 밀리고 연락도 끊기자 피해자 일부가 지난 3월 20일 정읍경찰서에 고소장을 내면서 수면 위로 불거졌다. 투자자 중 16명은 아직도 27억~28억원가량을 못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수사 단계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전주지검 정읍지청 1층 로비 안내판. 김준희 기자

전주지검 정읍지청 1층 로비 안내판. 김준희 기자

 A씨는 '법무법인(로펌)에서 부동산 투자를 하는데 여기에 투자하면 고수익이 보장된다" "부장검사 출신이 로펌을 차렸다" 등의 거짓말로 지인들을 속였다고 한다. 10명에 가까운 검찰 동료 일부도 A씨에게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빌려 준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동료들에게는 투자가 아닌 다른 용도로 급한 사정을 얘기하면서 '며칠만 쓰고 주겠다'며 돈을 빌렸다고 한다. 현재까지 정읍지청 직원 중에서 A씨를 고소한 동료는 1명이다. 해당 직원은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1억원에 가까운 현금을 빌려줬지만, 돈을 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가 불과 1년여 만에 300억원이 넘는 거액을 끌어모을 수 있었던 건 그의 '검찰 공무원' 신분과 고향인 정읍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좋은 평판이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에서 약 14년간 근무한 A씨는 4년 전쯤 전주지검에서 정읍지청에 온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행정 보조 업무를 했고, 그의 남편도 다른 지역 검찰청 소속 현직 검찰 수사관이다. 피해자들은 투자금을 모은 사람이 현직 검찰 직원인 데다 A씨가 시중 금리보다 훨씬 높은 이자를 지급해 '설마 검찰 직원이 사기를 치겠느냐'며 A씨를 믿었다고 한다.

 피해자 중 한 여성이 지난 3월 18일 'A씨와 연락이 안 된다'며 정읍지청에 찾아오기 전까지 직원 아무도 A씨가 여기저기서 돈을 빌린 줄 몰랐다. 김 지청장도 이날에야 A씨가 지인과 동료들에게 거액의 돈을 빌린 사실을 확인하고, 대검에 보고했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A씨는 직위 해제됐다.

전북 정읍시 수성동 전주지검 정읍지청 전경. 김준희 기자

전북 정읍시 수성동 전주지검 정읍지청 전경. 김준희 기자

 정읍지청은 여전히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분위기다. 김 지청장은 사건 당시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A씨는) 착실하고 일도 정말 잘해 청내에서 신망이 두터운 사람이었다"며 "피해를 본 사람들도 (A씨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의 거짓말에 대해) 크로스 체크(대조 검토)를 안 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료들과 지인들을 속이고, 검찰 다니는 걸 그런 식으로 써먹었다"며 배신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A씨가 지인들에게 300억원가량을 받았어도, 270억원이 넘는 투자금은 돌려줬기 때문에 사기 피해액은 훨씬 적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에 김 지청장은 A씨 사건을 이른바 '용도 사기'로 규정하며 "A씨가 중간에 갚은 돈을 뺀 실질적인 피해액은 27억~28억원이지만, 법리적으로는 300억원대 사기가 맞다"고 했다.

 김 지청장은 "사기는 상대를 속여 돈을 받아가는 것"이라며 "예컨대 주식 투자에 쓸 돈인데 부동산 투자금이라고 거짓말해서 돈을 받아갔으면 사기의 기망 행위로 범죄가 된다"고 했다. 그는 "전체적인 범죄 액수는 A씨가 거짓말해서 받은 돈인 300억원이고, 수사 기관에서 기소할 때는 300억원 사기가 된다"며 "중간에 돈을 갚은 건 범죄 성립 여부와 관계없고, 나중에 법원에서 양형할 때 참작 사유가 될 뿐"이라고 했다.

정읍=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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