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유감스러운 대통령의 위안부 운동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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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의연(정의기억연대)의 부실 회계 논란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은 사건의 본질을 적잖이 왜곡한 것으로, 실망만 더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윤미향 사건이 터진 지 한 달여 만의 입장 표명이었지만, 대통령의 상황 인식이 국민이 느끼는 엄청난 분노와는 괴리가 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그제 “일각에서 위안부 운동 자체를 부정하고 운동의 대의를 손상시키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며 “피해자 할머니들의 존엄과 명예까지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위안부 할머니 없는 위안부 운동을 생각할 수 없다. 위안부 운동을 이끌어오신 것만으로도 스스로 존엄하다”고 했다. 도대체 누가 위안부 운동의 대의를 부정한다는 말인가. 이번 윤미향 사태의 핵심은 명백하다. 정부 지원과 시민들이 낸 기부금이 실제로 할머니들 지원보다는 엉뚱한 곳에 더 많이 쓰였고, 윤 의원이 그중 상당액을 횡령했다는 의혹이다. 그것도 윤 의원과 30년 동지 격인 이용수 할머니가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30년 동안 윤미향에게 이용당했다” “그 많은 돈이 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는 폭로로 윤 의원과 정의연이 검찰 수사를 받는 단계에 오게 된 게 이번 사태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핵심 의혹인 윤 의원이나 정의연의 회계 부정에 대해선 한마디도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대신 “시민단체의 활동 방식과 행태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두루뭉술 화법으로 넘어갔다. 매우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비리 의혹을 감싸고 면죄부를 주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이용수 할머니의 폭로 이후 친(親)윤미향 진영에선 “대구 할매” “토착왜구” “대구스럽다”와 같이 차마 입에 올릴 수조차 없는 비난과 인격살인이 도를 넘고 있다. 최소한의 양식과 예의조차 실종된 언어 폭력으로 이 할머니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함구했다. 납득하기 어렵다.

윤미향 사건이 일어난 데는 정부 책임도 적지 않다. 2015년 한·일 합의로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을 문재인 정부는 “피해자가 배제됐다”며 절차적 흠결을 문제 삼아 일방적으로 해산 선언을 해버렸다. 일본에 대해서는 파기나 재협상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모호한 수사로, 위안부 피해자들에겐 일본 측이 조성한 10억 엔을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2년여 동안 이 문제를 방치해왔다. 2015년 위안부 협상이 ‘국가의 부작위에 의한 위안부 문제의 방치가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한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른 것임을 상기한다면 정부의 책임 방기가 계속되는 건 명백한 위헌이다. 이런 방관적 태도가 강제 징용자 배상 문제와 얽히면서 한·일 간 외교 마찰의 뇌관으로 작용, 지난해 무역전쟁까지 겪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지체와 방기에 대한 사과도, 향후 일정 제시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위안부 발언이 더욱 무책임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