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법원 “사실관계 소명됐다” 놓고 검찰·삼성 아전인수 해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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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오전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의혹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오전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의혹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검찰과 삼성이 손익계산에 분주한 모습이다. 외견상으로는 삼성이 완승한 모양새지만, 검찰이 실질적으로 손해본 건 거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 “범죄 혐의 소명과 같은 의미” #삼성 “검찰 수사가 부실했다는 뜻” #외견상 삼성이 완승 거둔 모양새 #“검찰 실질 손해 거의 없다” 분석도

뭐니 뭐니 해도 삼성이 거둔 이익은 작지 않다. 총수 공백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한 것만 해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결과다. 시간도 벌 수 있게 됐다. 기소되더라도 첫 공판이 열리기까지는 최소한 몇 달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불기소 가능성에 대해서도 계속 희망을 걸어볼 수 있게 됐다. 아무래도 영장 발부보다는 영장 기각이 지난 2일 소집 신청한 검찰수사심의위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검찰은 체면을 구겼다. 기습적인 삼성의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으로 허를 찔린 데 이어 ‘맞불’ 차원에서 청구한 영장마저 기각되면서 연타를 맞은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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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실질적 손해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애초부터 이 부회장 구속이 수사와 공소유지에 필수 전제조건은 아니었다는 게 분석의 근거다. 검찰은 삼성 임직원들을 줄소환한 데 이어 최종 타깃이었던 이 부회장도 두 번이나 불러 조사하는 등 사실상 수사를 종료한 상태다. 고검장 출신의 변호사는 “이 부회장이 구속된다 해도 ‘자백’이 나오거나 수사 결과가 달라지긴 어려워 큰 의미는 없을 것”이라며 “영장 청구는  미청구 시의 ‘삼성 봐주기’ 논란 등을 염두에 둔 다목적 포석이었을 뿐이며 검찰의 초점은 이미 기소와 유죄판결 쪽으로 옮겨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영장 기각에 대해 9일 담담하게 “아쉽다”고 밝히는 수준에 그쳤다는 점을 이런 관측과 연결하는 시각도 있다.

손익 셈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 건 원정숙(46·사법연수원 30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영장 기각 사유다. ‘범죄 혐의의 소명’이나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에 대한 판단을 담은 통상의 발부·기각 사유와 달라 삼성과 검찰이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고 있다.

“불구속 재판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서는 소명이 부족하다”는 표현에는 삼성이 환호했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구속 필요성이 없다는 취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인다”는 문구는 양측 간 해석이 엇갈린다. 삼성 측은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등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법원도 검찰 수사가 부실했다는 걸 인정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검찰에서는 “‘사실관계 소명’은 ‘범죄 혐의 소명’과 같은 의미”라는 반박이 나온다.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문구는 검찰이 반색할 만한 내용이다. 삼성 측이 불기소를 목표로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을 한 상황에서 사법부가 기소가 필요하다는 심중을 밝힌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어서다.

법조계에서는 결과를 확대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지방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영장 심사는 어디까지나 구속 필요성만을 따지는 절차인데 간혹 범죄 혐의에 대한 판단이 곁들여지는 경우가 있어 오해를 사곤 했다”며 “원 부장판사가 예단을 막기 위해 굉장히 신중하게 어휘를 고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 판결을 최종 출구라고 보면 이 사건은 이제 입구 근처에 막 발을 내디딘 수준에 불과하다. 영장 재판 결과에 과도하게 의미 부여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석 사회에디터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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