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시작된 '지옥'
A씨가 처음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건 2004년이다. 당시 그는 12세에 불과했다. 아버지인 B씨는 A씨의 어머니를 수차례 폭행한 뒤 그 옆에서 겁에 질려있던 A씨의 옷을 강제로 벗긴 뒤 성폭행했다. A씨는 저항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맞는 모습을 본 데다 B씨가 그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이날 시작된 성 착취는 지난 1월까지 이어졌다.
울산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박주영)는 지난달 29일 16년간 딸을 성폭행한 B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미성년자 강간,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카메라등이용촬영), 폭행 등 7개 혐의가 모두 인정됐다.
A씨가 처음 임신한 건 중학교 2학년 때다. 중학생의 나이에 임신중절을 경험했던 그는 18세 때 네 번째 임신중절을 겪어야만 했다. 이후에도 B씨의 성폭행이 계속되자 A씨는 피임약을 복용했다.
"어렸을 때부터 폭력…저항할 수 없었다"
4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판결문과 A씨 측에 따르면 A씨는 아버지의 뜻에 저항할 수 없었다고 한다. 지속적인 가정폭력 때문이다. 재판부는 “B씨는 피해자가 어렸을 때부터 부인과 피해자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내거나 폭력을 행사했다”며 “이로 인해 가족 누구도 B씨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B씨의 성폭행은 A씨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계속됐다. B씨는 19차례에 걸쳐 강간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지만, 이는 날짜와 장소가 특정된 횟수만 포함한 것이다. 실제론 A씨는 B씨로부터 평균적으로 주 1회 이상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B씨는 A씨를 ‘마누라’라고 부르면서 나체 사진과 영상을 찍어 보내라고 강요하고, 자신과의 성관계 영상까지 촬영했다.
남자친구 생기자 뺨 때리고 성폭행
A씨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을 안 B씨의 성폭행 빈도는 늘어났다. B씨는 지난해 1월 1일 손바닥으로 A씨의 머리를 때리면서 “남자를 몇 번 만났느냐, 성관계를 했는지 안 했는지 말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뺨을 때리기도 했다. 며칠 후엔 A씨가 늦게 귀가하자 “그 남자를 만나고 왔냐”고 화를 낸 뒤 성폭행했다. 이 같은 성폭행은 지난 1월 7일부터 14일 사이에 7차례 일어났다.
A씨가 중학생 때부터 당해 온 성폭행의 고리를 끊기 위해 외부에 이 사실을 알리기까지 15년이 넘게 걸렸다. 그는 B씨로부터 머리를 발로 차이거나 뺨을 맞는 일이 잦았고, 이로 인해 공포가 컸다고 한다. B씨의 말을 조금이라도 듣지 않을 경우엔 학교에 가지 못 하고 집에 감금당해야만 했다.
반항은 어머니 폭행으로 돌아와
A씨가 성인이 돼 대학을 졸업한 이후 집을 나가 혼자 살겠다고 하자 B씨는 A씨는 물론 그의 어머니에게까지 무차별 폭력을 행사했다. A씨가 가족을 위해 말을 들어야만 한다는 왜곡된 인식을 하게끔 한 것이다. 어머니가 B씨의 딸 성폭행 사실을 알면서도 말리지 않고 묵인한 것도 20년 넘게 이어진 가정폭력 때문이다. 검찰은 가정 내 성범죄를 묵인한 어머니를 B씨의 피해자로 봐 기소하지 않았다.
경찰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동안 친족 강간 범죄 331건이 발생했다. A씨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가정 내 성폭력은 물리적·정서적 폭행을 함께 동원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에 장기간 이뤄지고 벗어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외부에 알리고 도움받아야"
박소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부장은 “제3자 관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가정 내에서는 일어나곤 한다”며 “가해자는 피해자가 저항하거나 벗어나려고 하면 ‘너 때문에 가족 관계가 깨진다’는 식으로 압박하면서 폭행한다”고 말했다. 이어 “더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외부에 알리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교육을 통해 심어주는 게 우리 사회가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