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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바둑판 못만들어 40억 손해? '황당사업' 신안군 황당주장

중앙일보

입력

100억원대 황금바둑판을 만들려다 반대 여론에 부딪혀 사업을 취소했던 전남 신안군이 “황금바둑판을 만들지 못해 40억원을 손해 봤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세금 낭비 논란이 재점화했다. 신안군 재정자립도는 8.55%(2019년 기준)로 전국 최하위권이다.

신안군 108억 들여 바둑판 만들려다 중단 #보도자료 내고 "40억원이 사라졌다" 주장 #애초 계획엔 작년 아닌 올해부터 금 매입

“금값 뛰어 40억원 허공으로 사라졌다”

전남 신안군이 지난 2일 언론에 배포한 '1년 전 황금파둑판 제작했더라면~'이라는 보도자료. [사진 신안군]

전남 신안군이 지난 2일 언론에 배포한 '1년 전 황금파둑판 제작했더라면~'이라는 보도자료. [사진 신안군]

신안군은 지난 2일 각 언론사에 ‘1년 전 황금바둑판 제작했더라면’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보도자료에서 신안군은 “1년 전 신안군 선택이 옳았다”며 “바둑판 제작을 위해 조례 제정까지 추진했지만,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멈췄던 황금바둑판 얘기”라고 밝혔다.

신안군은 지난해 ‘신안군 황금바둑판 조성 기금 설치 및 운용 조례’를 만들어 입법 예고했다. 108억원의 예산을 들여 황금 189㎏(순도 99%)을 매입한 뒤 가로 42㎝·세로 45㎝ 크기의 황금바둑판을 제작하겠다는 게 조례의 핵심이다. 바둑판 제작에 필요한 예산은 모두 주민이 낸 세금이다.

전남 신안군이 지난해 6월 3일부터 24일까지 공고한 황금바둑판 조성 기금 조례 제정안. [사진 신안군]

전남 신안군이 지난해 6월 3일부터 24일까지 공고한 황금바둑판 조성 기금 조례 제정안. [사진 신안군]

신안군은 이날 “1년이 지난 지금 금값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40억원 가까운 돈이 허공으로 사라졌다는 아쉬움이 터져 나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황금바둑판 조례 입법예고 당시 순금 한돈당 21만원이었던 금값이 최근에는 29만원까지 올라 상대적으로 40억원의 손해를 봤다는 게 신안군의 주장이다.

황금바둑판 조례는 2020년부터 금 매입

과연 신안군은 40억원을 손해 봤을까. 황금바둑판 조례를 살펴보면 신안군은 올해부터 2022년까지 3년 동안 189㎏의 황금을 3분의 1씩 나눠 사들일 계획이었다. 2019년 금값이 21만원이었더라도 올해 매입할 금은 오른 가격으로 사야 한다.

박우량 전남 신안군수가 지난해 7월 최종적으로 결재한 '신안군 황금바둑판 조성 기금 설치 및 운용조례 제정 계획'. [사진 신안군]

박우량 전남 신안군수가 지난해 7월 최종적으로 결재한 '신안군 황금바둑판 조성 기금 설치 및 운용조례 제정 계획'. [사진 신안군]

신안군 관계자는 당시 조례에 189㎏이란 조건을 담은 이유에 대해 “금이라는 게 상황에 따라 가격이 변동할 수 있기 때문에 금액으로 한정한 것이 아니라 ㎏ 단위로 명시했다”고 설명했다.

지방자치단체가 만든 황금 조형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 주목받은 사례는 전남 함평군의 ‘황금박쥐상’이 있다. 지난해 3월 3인조 도둑이 훔치려다 실패한 함평읍 황금박쥐 생태전시관에 전시된 85억원(당시 가격) 상당의 황금박쥐상이 2007년 제작 당시 27억원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가 됐다.

세금 줄줄 황금마케팅에 비난 여론

신안군은 지난해 논란이 일자 “재정자립도가 낮은 신안군이 무리하게 (황금바둑판 사업을) 추진하고 혈세 낭비라는 지적이 많았다”며 “이 때문에 고심 끝에 황금바둑판 사업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부 출향인사들이 자체적으로 황금바둑판 제작을 추진하고 있지만, 법인설립 등 절차가 늦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안군이 지난해 6월 3일부터 24일까지 공고한 '황금바둑판 조성 기금 조례 제정안. 신안군은 황금 189㎏을 매입할 계획이었다. [사진 신안군]

신안군이 지난해 6월 3일부터 24일까지 공고한 '황금바둑판 조성 기금 조례 제정안. 신안군은 황금 189㎏을 매입할 계획이었다. [사진 신안군]

신안군은 황금바둑판 제작을 추진하면서 관련 규정도 지키지 않았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4년 9월 공공조형물 건립을 둘러싼 갈등과 무분별한 건립에 따른 예산 낭비를 방지하기 위해 ▶주민대표 참여 건립심의위원회 구성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장치 마련 등을 권고했다. 하지만 신안군은 황금바둑판 조례를 제정할 때 관련 사항을 준수하지 않았다. 신안군의 황금바둑판 조례 제정 계획은 지난해 박우량 군수의 결재를 받아 진행했다.

“박우량 군수 금값 상승으로 군 재정 보탬 확신”

신안군의 주장대로 황금바둑판이 재정에 보탬이 되려면 금값이 오를 때 팔아야 한다. 하지만 신안군은 황금바둑판을 제작한 뒤 평상시에는 군청 수장고에 보관하고 모형만 비금도 이세돌 바둑기념관에 전시할 방침이었다.

전남 신안군 비금도 이세돌기념관에 설치된 대형 바둑판 조형물. [사진 신안군]

전남 신안군 비금도 이세돌기념관에 설치된 대형 바둑판 조형물. [사진 신안군]

국수산맥 국제바둑대회나 시니어 바둑대회 등 각종 바둑대회가 열릴 때 제한적으로 진품을 전시할 뿐 금값이 오르면 팔겠다는 계획은 애초부터 없었다. 전시 목적으로 추진됐던 사업이 금값이 오르자 ‘투자’까지 노린 기회로 바뀐 셈이다.

신안군 관계자는 “(바둑판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금 가격이 오르면 재정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며 “아쉽게도 중단됐다”고 말했다.

신안=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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