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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시밀러 세계 1위, 원조보다 비싼 '바이오베터'가 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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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송도에 세계 최대 바이오시밀러 생산시설을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 내부. 세포 증식을 위한 배양기 등이 설치되어있다. [사진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 송도에 세계 최대 바이오시밀러 생산시설을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 내부. 세포 증식을 위한 배양기 등이 설치되어있다. [사진 삼성바이오로직스]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갯벌과 바다가 전부였던 인천의 서남쪽 끝 송도국제도시. 지금은 ‘K바이오’를 대표하는 장소로 떠올랐다.  송도바이오대로를 사이에 두고 한국은 물론 세계를 대표하는 바이오복제약(바이오시밀러) 기업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가 자리잡고 있다. 이외에도 이들 기업에 필요한 항체의약품 관련 의약품과 기자재를 납품하는 머크 등 외국기업 47개사가 포진해있다.

바이오시밀러는 바이오 산업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최초로 세계적 바이오 기업 나올 수 있게 해 준 ‘효자’다. 셀트리온은  세계 최초로 바이오시밀러를 세상에 내놨다. 2012년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세계 최초로 바이오시밀러 ‘램시마’ 판매 허가를 결정했고 그 해 8월 램시마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램시마는 존슨앤드존슨의 제약부문 자회사 얀센의 자가면역질환치료제인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다. 뒤이어 셀트리온은 혈액암 치료제 바이오시밀러 ‘트룩시마’와 유방암ㆍ위암 치료제 ‘허쥬마’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바이오시밀러 ‘삼총사’를 만들어냈다.

인천 연수구 송도의 셀트리온 1공장. [사진 셀트리온]

인천 연수구 송도의 셀트리온 1공장. [사진 셀트리온]

2015년 삼성바이오에피스도 바이오시밀러 주자로 뛰어들었다. 화이자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엔브렐의 바이오시밀러 ‘브렌시스’ 국내 허가를 시작으로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 ‘렌플렉시스’를 개발해 유럽 등에 진출했다. 현재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은 바이오시밀러는 셀트리온이 3개, 삼성바이오에피스가 4개다. FDA가 승인한 바이오시밀러의 2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의 매출이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30%에 육박한다.

바이오시밀러 매출 상위 5개 업체는 삼성바이오에피스ㆍ셀트리온ㆍ암젠ㆍ산도즈ㆍ코히러스로 꼽힌다. 이 중 세계 주요 4대 바이오시밀러 중 약 3분의 2를 국내기업이 생산 중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바이오의약품 생산규모는 연간 36.2만 리터로,  세계 최대 수준이다. 성장세도 가파르다. 국내 기업의 바이오시밀러 수출실적은 2014년 대비 2018년에 5배 증가했다. 이는 한국 바이오의약품 전체 수출액의 70%(약 11억 달러)를 차지한다.  K바이오시밀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과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도 오히려 급성장하고 있다. 셀트리온의 판매사인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지난달 15일 분기보고서를 통해 1분기 연결기준 매출액 3569억원, 영업이익 558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은 62%, 영업이익은 494% 증가한 수치다. 특히 매출액은 1분기 최초로 3000억원을 돌파했다.

잘 키운 바이오시밀러는 오히려 원조를 뛰어넘기도 했다. 램시마는 2018년 오리지널 의약품 레미케이드의 판매량을 제쳤다. 의약품 시장 조사 업체 아이큐비아(IQVIA)에 따르면 램시마는 지난해 3분기 유럽에서 59%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실제로 2020년 1분기 미국 바이오의약품 매출액을 살펴보면, 바이오시밀러가 아직 출시되지 않은 휴미라(제조사 애브비)를 제외하고 오리지널 제품의 매출이 감소했다. 엔브렐(암젠), 레미케이드(J&J), 허셉틴(로슈) 등이다.

바이오시밀러 수출 실적. 그래픽=신재민 기자

바이오시밀러 수출 실적. 그래픽=신재민 기자

바이오시밀러는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가격이 낮은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이다. 고가 바이오의약품과 동등한 치료효과를 가지면서도 합리적 가격으로 더 많은 환자들이 치료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복제약 수요가 증가하면서 국내 바이오시밀러 업체들에게 또 한번 기회 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 각국 정부가 약품 수급과 보험 관련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지금보다 복제약 사용 비중 늘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 때문이다. 유럽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복제약 처방을 늘렸다. 실제 셀트리온 해외판매 담당하는 셀트리온 헬스케어는 미국과 유럽에서 판매 호조로 1분기 실적 급증했다.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48% 성장했다. 2025년에는 663억 달러(약 8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현재의 1위 자리를 앞으로도 지키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점이다.  규모의 경제가 통하는 바이오시밀러의 경우 다른 나라 기업도 필요시 규모와 시설을 갖춰 경합할 수 있다. 실제 2017년 화이자도 같은 레미케이드의 복제약을 FDA로부터 승인받았다. 이를 위해 업계에서는 근본적인 복제약의 문제점을 뛰어넘을 수 있는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겼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제품별로 최초 기업이 유리한 구조”라며 “오리지널 약 특허가 가장 많이 풀리는 시기인 2025년에는 레드오션이 되고 더 많은 기업이 도전할 텐데 품질과 가격 경쟁이더 치열해 질 것으로 보인다”며 ‘제자리에 있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뛰어야한다’는 ‘붉은 여왕 효과’의 교훈처럼 ‘퀀텀 점프’(대도약)가 필요한 시점이다.

세계 바이오시밀러 시장 규모 전망. 그래픽=신재민 기자

세계 바이오시밀러 시장 규모 전망. 그래픽=신재민 기자

바이오시밀러의 다음 격전지는 ‘바이오베터’다. 기존 바이오의약품 효능과 편의성을 개선한 바이오베터는 신약에 맞먹는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 K바이오의 차세대 대표주자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바이오베터는 기존 제품에 비해 효능, 투여 횟수, 투여 방식 등을 개선한 개량 신약으로 구분된다. 이 때문에 오리지널 의약품에 비해 바이오시밀러는 70% 안팎의 가격이 책정되지만, 바이오베터는 2~3배 비싸게 판매할 수 있다. 셀트리온의 ‘렘시마SC’가 대표적이다. 램시마SC는 셀트리온이 앞서 정맥주사형으로 개발한 ‘램시마’의 제형을 피하주사형으로 변경한 제품이다. 램시마가 매번 환자가 병원을 방문해 의료진으로부터 처치를 받아야 하는 반면 램시마SC는 병원에 가는 번거로움 없이 환자 스스로 투약할 수 있다.

김태억 전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 사업본부장은 “글로벌 빅파마가 최대 50%까지 영업이익을 남기는데 비해 바이오시밀러는 10~20%대에 그친다”며 “바이오시밀러만으로는 이 벽을 넘기 힘들다”고 말했다. 오태광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글로벌 시장에서 바이오베터가 오리지널 제품보다 더 성공하기도 한다”며 “결국엔 바이오베터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바이오시밀러(Biosimilar)= 의약품은 크게 ‘화학합성 의약품’과 ‘바이오 의약품’으로 나뉜다. 바이오의약품이란, 유전자재조합ㆍ세포융합 등 바이오 기술을 활용해 만든 새로운 물질이나 항체 등이다. 이때 바이오 ‘시밀러’(similar)는 바이오의약품의 복제약이라는 뜻이다. 살아있는 단백질 세포를 이용하는 바이오의 특성상 오리지널 의약품과 완벽하게 똑같이 만들어낼 수 없어 ‘시밀러’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바이오베터(Biobetter)=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을 기반으로 효능이나 안전성, 편의성 등을 개량한 약이다. 기존 바이오의약품보다 더 낫다는 의미로 '바이오베터'라 불린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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