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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검사 ´선별 임신´ 파문 확산

중앙일보

입력

미국의 한 부부가 유전 질환을 앓고 있는 딸에게 조직을 이식해주기 위해 둘째 아이를 유전자 검사로 골라 낳은데 이어 영국에서도 한 부부가 유전자 검사를 이용해 딸을 출산하도록 허가해 달라고 당국에 요청, 선별 임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영국 정부가 이를 허가할 경우 남녀 선별 임신을 국가가 공식 인정하는 최초의 사례가 되며 남아선호 경향이 큰 아시아 지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스코틀랜드에 사는 메스터턴 부부는 4일 시험관 수정을 통해 딸이 될 배아만 임신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영국 인간 생식 및 배아 통제국(HFEA) 에 요구했다.

어머니 자궁에 배아를 착상시키기 전에 유전자 검사를 해 남아로 판명되면 폐기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병원들의 시험관 수정을 감독하고 있는 HFEA는 부모가 유전 질환을 앓고 있어 후손의 건강이 우려될 경우에 한해 유전자 검사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허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네명의 아들을 두고 있는 메스터턴 부부가 반드시 딸을 낳기를 고집하는 근거는 1년 전 세살된 딸이 화재로 사망해 삶의 의미를 잃었다는 것. 부부는 15년 동안 딸을 낳기 위해 노력하다 아들만 얻었으며, 딸이 숨지자 가정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딸을 낳도록 허용해 심리적인 가족균형이 회복되게 해야 한다" 는 심리학자와 가정의의 소견서까지 제시한 이 부부는 HFEA가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난 2일 영국에서 발효된 유럽연합(EU) 인권헌장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법원에 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

한편 영국 런던대 부속병원 인공수정 연구팀은 이날 현재 가족에게 조직을 이식할 수 있는 태아만 골라 임신하는 일이 독일.벨기에 등에서도 진행 중이라며 HFEA에 가족 치료용 목적의 선별 임신 허가를 요구했다.

또 일부 영국 의사들도 성구별을 위한 유전자 검사 실시 여부를 미국처럼 병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국내 실태=한국에서도 시험관 수정란의 유전자를 검사하는 ´착상전 유전진단(PGD) ´ 이 활용되고 있다.

이숙환(李淑環) 차병원 유전학연구소장은 "국내 병원 서너곳에서 수년 전부터 PGD를 실시해 왔다.

그러나 모든 병원들이 부모에게 근이영양증.척수성근위축증 등 치명적인 유전질환이 있는 경우에 한해 실시하며, 부모들의 성구별 요청은 거부하고 있다" 고 밝혔다.

李소장은 "현재 유전자 검사에 의한 성구별을 규제하는 법률안이 마련되고 있지만 검사 기법이 점차 널리 알려져 남용될 우려가 있다" 고 말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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