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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화상병에 과수원 갈아엎는다" 충주·제천 농가 '확진 공포'

중앙일보

입력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충북 충주시 산척면의 한 과수농가에서 26일 사과나무를 땅 속에 묻고 있다. [사진 충주시]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충북 충주시 산척면의 한 과수농가에서 26일 사과나무를 땅 속에 묻고 있다. [사진 충주시]

“지난해 1000그루를 묻었는데 또 과수원을 갈아엎게 생겼습니다.”

충주·제천 34곳 확진 급속도로 번져 #과수원 5% 이상 발생시 전체 매몰 #치료제 없어 '과수 에이즈'로 불려 #농진청 "의심나무 발견시 신고" 당부

충북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장모(63)씨는 지난 18일 사과나무 알 솎기 작업을 하러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새순이 나온 나무 1~2그루에서 가지 끝이 불에 그을린 것처럼 검게 말라붙은 것이다. 농업기술센터에 “과수화상병이 의심된다”고 신고했지만, 확산 속도는 걷잡을 수 없었다.

 장씨는 “신고 사흘 뒤에 농장 450그루 중에 100여 그루가 화상병 증상을 보였다”며 “지난해에도 1.5㎞ 떨어진 농장에 도져서 사과나무 전체를 땅속에 묻었다. 마지막 남은 농장도 폐쇄할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과수화상병에 걸린 장씨의 사과나무는 12년생으로 올해 최상품 사과 생산이 기대됐었다. 장씨는 나무를 묻은 과수원에 감자나 콩을 기를 예정이다.

 충북 충주·제천 지역에 과수화상병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27일 농촌진흥청과 충북도에 따르면 이날까지 전국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농가는 45곳이다. 이 가운데 충북이 34곳으로 가장 많다. 충주가 31곳, 제천이 3곳이다. 충주 산척면과 소태면, 경계 지역인 제천 백운면에 집중됐다. 이 지역은 산기슭을 따라 사과·배를 기르고, 농가끼리 왕래도 잦다. 충북도는 과수화상병 의심 신고가 110건에 달해 확진 농가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과수화상병에 걸린 나무는 잎이 불에 그을린 것처럼 검게 변하고, 이후 가지와 줄기가 말라 죽는다. [사진 충주시]

과수화상병에 걸린 나무는 잎이 불에 그을린 것처럼 검게 변하고, 이후 가지와 줄기가 말라 죽는다. [사진 충주시]

 과수화상병은 주로 사과나 배 등에서 발생한다. 감염되면 잎과 꽃·가지·줄기·과일 등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붉은 갈색 또는 검은색으로 변하며 말라 죽는다. 아직 치료제가 없고, 전염력이 강해 ‘과수 구제역’ ‘과수 에이즈’로 불린다. 발생원인도 오리무중이다. 나무에 잠복한 균이 적정 기후를 만나 발현되거나, 균이 비바람·벌·전지가위 등을 통해 번지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국내에서는 2015년 경기도 안성에서 처음 발생한 후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해 충북지역 피해농가는 국내 전체 발생농가 181곳의 80%에 달하는 145곳이다. 피해면적은 88.9㏊다. 20억2000만원이 피해보상금으로 지급됐다. 정충섭 농촌진흥청 재해대응과장은 “과수화상병은 병원균을 갖는 기주식물이 180여 종에 달해 정확한 전염경로를 찾기 어렵다”며 “사과·배·살구·복숭아나무나 화훼 식물에서 잠복기를 거쳐 발병하거나 꿀벌을 통한 전염, 전정 작업을 하는 가위에 의해서도 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수화상병 발생 농가는 과수원 내 감염 나무가 5% 이상이면 나무를 뿌리째 뽑아 묻고 폐원한다. 나무를 묻는 구덩이는 5m 이상 깊이에 생석회를 넣는다. 이곳엔 3년 동안 균을 보유할 가능성이 큰 기주식물과 작물을 재배할 수 없다. 충주에서는 송강리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50년째 과수 농장을 운영하는 홍모(82)씨는 “동네 전체 과수농가 30여 곳에서 과수화상병이 걸렸다”며 “산림조합 관계자들이 과수원에 와서 나무 430그루를 뽑아 땅에 묻었다”고 했다.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충북 충주시 산척면의 한 과수농가에서 26일 산림조합 관계자들이 전기톱으로 사과나무를 자르고 있다. [사진 충주시]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충북 충주시 산척면의 한 과수농가에서 26일 산림조합 관계자들이 전기톱으로 사과나무를 자르고 있다. [사진 충주시]

 방역당국은 지난 겨울 높은 기온으로 개화 시기가 빨라지면서 화상병 발생 시기도 1주일 정도 앞당겨졌고, 최근 잦은 강우와 개화기 벌에 의한 꽃 감염 등이 발병 주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과수화상병이 충주 인접 지역인 경북 북부로 넘어오지 않도록 방역에 집중하고 있다”며 “의심 나무가 발견되면 자체적으로 제거하지 말고 즉시 지역 내 농업기술센터로 신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충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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