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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만난 소주성, 깊어진 양극화에 서민 더 아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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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올해 1분기 소득 하위 20%와 상위 20% 가구의 빈부격차가 더 커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만 할 수도 없다. 꾸준히 이어져 온 흐름이라서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 경제성장의 선순환을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도 소득 불평등은 더 심해진 것이다.

1분기 상위 20% 소득은 6% 늘고 #하위 20% 소득은 제자리걸음 #소득격차, 5.18배서 5.41배로 악화 #개정 전 통계방식 적용 땐 6배 차

소득분배지표 변화.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소득분배지표 변화.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통계청이 21일 발표한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1분기 소득 상위 20%(5분위)는 하위 20%(1분위)보다 5.41배 더 많은 소득을 올렸다. 지난해 1분기(5.18배)보다 소득분배지표가 악화했다.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 벌이가 훨씬 많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5분위 가구 월평균 소득은 1분기 1115만8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3% 불었다. 5개 소득 계층을 통틀어 가장 큰 폭의 증가율이다. 저소득층인 1분위 가구는 월평균 149만8000원의 소득을 올렸는데, 전년과 큰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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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나랏돈을 풀어 저소득층의 소득 감소를 메웠는데도 소득 격차는 오히려 커졌다. 1분기 전체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535만8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 증가했다. 근로소득(1.8%)이나 사업소득(2.2%)은 소폭 늘었다. 하지만 정부가 지급하는 공적연금, 사회수혜금 등을 뜻하는 공적이전소득(13.4%)은 대폭 증가했다. 일해서 번 돈보다 정부 재정으로 준 돈이 더 많이 증가했다는 의미다. 퇴직수당, 실비보험금 같은 일시적인 소득을 의미하는 비경상소득도 79.8% 급증했다. 긴급재난지원금과 실업자 퇴직수당 등의 지급이 본격화한 2분기에는 공적이전소득과 비경상소득은 더 커질 전망이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저소득층의 소득 가운데 정부가 지불하는 공적이전소득 비중이 높은데도 소득 불평등은 더 악화했다는 점은 ‘소주성’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날 나온 가계동향조사 통계는 표본과 조사 방식을 개편한 첫 결과물이다. 그래서 소득 격차 변화를 과거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아예 비교·분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분기별 소득 격차(5분위 배율)를 과거와 현재 방식으로 각각 산출해 비교하면 격차가 0.62~0.72포인트로 일정하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개편 전후의 수치가 일정한 격차를 두고 움직였다면 올해 1분기 통계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지갑 닫아 소비지출 -6%, 웬만해선 안 줄이는 교육비도 -26%

개편된 조사 방식에 따른 올해 1분기 5분위 배율(5.41배)에 0.6~0.7포인트를 더하면 추세를 가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계산대로라면 올 1분기 상위 20%와 하위 20% 소득 격차는 6배를 넘어 역대 최악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이전 최고 기록은 2018년 1분기(5.95배)다.

이런 흐름은 소주성 효과 주장과 배치된다. 지난 13일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장은 “소주성 정책을 통해 성장률 급락을 억제할 수 있었다”며 “일자리 확대와 최저임금 인상, 공적이전소득 강화를 통해 가계소득과 소비가 뚜렷하게 늘고, 소득 분배가 개선되는 성과가 확인됐다”고 말했다. 당시 ‘자화자찬’ 발언이라는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 정부가 성장률과 분배를 모두 놓친 것은 자명하다”고 반박했다. 가구의 처분가능소득이 늘어난 것은 취업자 수 증가 때문이긴 하지만, 대부분 60대 이상 노인 일자리라는 것이다.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다. 안 교수는 “공적 지원 중심의 정부 액션 플랜으로 인해 30·40대 중심의 민간 일자리는 오히려 활력이 줄었다”며 “소득뿐 아니라 자산 격차까지 더하면 앞으로 사회 전체의 불평등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성희 고려대 연구교수는 “소득은 기본적으로 후행 지표이기 때문에 1분기에는 코로나19 영향이 본격 반영되지 않았다”며 “실직이 본격화한 2분기에는 소득분배지표가 대폭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한편 1분기 가계부는 반갑지 않은 흑자를 기록했다. 가구당 흑자액은 평균 141만3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8.4% 늘었다. 코로나19로 외출을 줄이고 지갑을 닫았기 때문이다. 전체 가구로 보면 1분기 월평균 소득이 3.7% 증가하는 사이 소비지출액은 6% 감소했다. 소비지출액 감소 폭은 2003년 통계 집계 이후 최대다.

오락·문화(-25.6%), 의류·신발(-28%), 음식·숙박(-11.2%) 지출이 큰 폭으로 줄었다. 웬만해선 줄어들지 않는다는 교육지출(-26.3%)마저도 코로나19의 영향을 비껴가지 못했다.

세종=조현숙·임성빈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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