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금리=파월 최후의 화살…시장은 이미 "이르면 12월" 베팅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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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통화정책의 기본 중 기본인 기준금리를 정하는 인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 지난 2월 의회 출석 당시 모습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통화정책의 기본 중 기본인 기준금리를 정하는 인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 지난 2월 의회 출석 당시 모습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이너스 금리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14일(현지시간)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 화상 대담을 통해서다. 마이너스 금리는 파월 의장에게 있어선 최후까지 남겨놓고 싶은 화살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지난 3월 기준금리를 '0'으로 인하하겠다는 결정은 그가 직접 내렸다. 그러나 제로의 바닥을 뚫고 마이너스 지하까지 가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파월 의장의 성향을 잘 아는 이들에겐 사실 놀랄 일은 아니다. 파월 의장의 오랜 지인인 애덤 포젠 PIIE 소장 역시 관련 질문을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기자들이 좀이 쑤실 것 같은 질문은 마이너스 금리에 관한 것일텐데, 사실 나는 당신의 대답을 알고 있다." 시종일관 차분하던 파월 의장은 이 말에 '하하' 소리내어 웃기까지 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이 14일(현지시간) 화상 대담에서 애덤 포젠 PIIE 소장의 마이너스 금리 질문에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물론, 이렇게 웃고는 곧바로 예의 진중한 표정으로 바로 돌아갔다. [PIIE 유튜브 캡쳐]

제롬 파월 Fed 의장이 14일(현지시간) 화상 대담에서 애덤 포젠 PIIE 소장의 마이너스 금리 질문에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물론, 이렇게 웃고는 곧바로 예의 진중한 표정으로 바로 돌아갔다. [PIIE 유튜브 캡쳐]

그가 공식 석상에서 소리 내서 웃는 건 흔한 일은 아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차분한 어조와 또렷한 발성이다. 파월은 포젠 소장을 향해 웃으며 “(마이너스 금리) 정책에 대한 팬들이 있는 건 잘 안다”고 운을 뗐다. ‘트럼프’ 세 글자만 박지 않았을 뿐 대통령을 향한 돌직구다. 파월 의장은 이어 “하지만, 현재로선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에게 대놓고 ‘노’라고 답한 것.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마이너스 금리의 혜택을 다른 국가들이 누리고 있는 이상, 미국 역시 그 ‘선물’을 받아야만 한다”고 적었다. 기준금리 결정권을 쥔 Fed의 의장인 파월에 대한 직접적 압박이다. 지난해에도 "미국도 하고 유럽도 하는 데 우리는 왜 안 되냐"라며 마이너스 금리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파월 의장이 이번에 마이너스 금리는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고 보는 건 조심스럽다. 그는 “우리는 (마이너스 금리 외에) 좋은 도구들을 갖고 있으며 (일단) 그 도구들을 사용할 것”이라며 “금리와 Fed가 그간 해온 (회사채) 채권 매입 정책과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라고 언급했다. 포워드 가이던스란 금융 정책 방향성을 시장에 미리 알려주는 통화 정책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리라고 올린 트윗. 파월 Fed 의장을 향한 직접 압박이다. [트위터 캡처]

트럼프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리라고 올린 트윗. 파월 Fed 의장을 향한 직접 압박이다. [트위터 캡처]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제로 금리 압박 노래를 불렀을 때도 꿈쩍 않았던 파월은 2월 말부터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3월, 금리를 제로로 끌어내리는 ‘빅 컷’ 조치를 단행했다. 그를 움직이는 건 시장이지 트럼프가 아니라는 얘기다. 혹시 시장이 마이너스 금리를 원할 경우, 파월은 최후의 화살을 쏠 수 있다.

시장은 이미 이런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채권 트레이더들은 Fed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 가능성에 공격적으로 베팅하고 있다. 블룸버그12일(현지시간)에 따르면 미국 국채 선물은 이르면 올해 12월 Fed가 금리를 0% 아래로 인하할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다. 12일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에 따르면 Fed 정책 방향에 대한 투자자 전망을 반영하는 금리 옵션은 미 기준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질 가능성을 23%로 봤다. 1주일 만에 두 배 넘게 오른 수치다. 시장은 이미 파월 의장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리라는 데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2017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파월을 Fed 의장으로 임명했다는 소식을 알린 뒤 파월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17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파월을 Fed 의장으로 임명했다는 소식을 알린 뒤 파월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본인이 직접 임명했던 파월 의장을 압박하는 건 뉴스가 아니다. 트윗 등을 통해 “미쳤다” “미국의 적”이란 주장에다, 해임 위협까지 가했다. 둘은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게 워싱턴과 월스트리트 공동의 분위기다. 트럼프 발 맹공에 파월은 주로 침묵 무시 일관 전략으로 응해왔다.

파월 의장은 정치권력의 특성을 잘 안다. 프린스턴 대학 시절 전공을 정치학으로 택했다. 학사 논문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극복하고 정치 혁신을 이뤄낸 과정으로 주제를 잡았다. 정치학을 공부한 뒤엔 정치에 흥미를 잃었는지, 조지타운에서 법학박사를 받고 변호사로 활동한다. 아버지 역시 변호사였다. 그러다 월가 투자은행과 법무법인에서 일하며 경제계에 발을 들여놓고, 2018년엔 비(非) 경제인으론 처음으로 Fed 의장이 됐다.

경제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텃세도 겪었지만, 지금은 그의 정치ㆍ법조 경력이 빠른 판단력과 실행력으로 평가를 받는 모양새다. 청빈한 이미지가 강점이지만 의외로 연방준비제도(FRD) 이사회 멤버 중 가장 부자다. 그의 자산은 약 1900만 달러(약 23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파월 의장의 발언은 월가를 들었다 놨다 한다. 2018년 파월 의장의 발언 생중계를 보며 월가 트레이더들이 흥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파월 의장의 발언은 월가를 들었다 놨다 한다. 2018년 파월 의장의 발언 생중계를 보며 월가 트레이더들이 흥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파월 의장에게도 고민은 많다. 천문학적 양적완화(QE)로 돈을 풀었지만 코로나19에 막힌 경제의 숨통은 쉽사리 살아날 것 같지 않다. 파월 본인도 “경기 회복이 우리의 바람보다 늦어질 수 있다”며 “느린 회복은 기업 및 가계 파산으로 이어지며 오랜 상처를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기준금리로 통화 정책을 주도하는 Fed의 존재 자체가 시험대에 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월15일자로 ‘Fed의 시대는 끝났다. 위험한 앞길에 대비하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를 실었다. WSJ는 “‘Fed에 대들지 말라’는 월가의 격언은 효력을 잃고 있다”며 “기준금리를 중심으로 한 통화정책이 많은 국가에서 힘을 못 쓰고 있으며, 미국 역시 비슷한 길을 갈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이후, 사태는 악화일로다. 파월 의장의 어깨엔 미국 경제에 더해 Fed의 운명까지 걸려 있는 셈이다.

전수진·배정원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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