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보수 유튜버 모시더니 이젠 "썩은 놈들"…통합당의 변심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무성 미래통합당 의원. [뉴시스]

김무성 미래통합당 의원. [뉴시스]

미래통합당과 보수 성향 유튜버 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보수 유튜버들을 공개 저격하는 통합당 인사들이 부쩍 늘었다. 총선 기간 당내에서 ‘보수 유튜버 챙기기’ 논란이 있었을 정도로 밀월 관계를 유지했던 것과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도화선에 불을 댕긴 이는 김무성 통합당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 11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결국 다 돈 벌어먹는 놈들이다. 조회수 올려서 돈 벌어먹기 위해 자극적인 말을 쏟아낸다”고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보수 유튜버들을 겨냥해 “나쁜 놈들” “전부 썩은 놈들”이라고도 했다. 같은 당 이준석 최고위원도 사전투표 조작 의혹을 놓고 보수 유튜버들과 연일 충돌하고 있다. 이 최고위원은 11일 페이스북에 “선거 시스템을 제물로 장난칠 거면 유튜브 채널을 걸어라”며 “그것 없이 코인 얻으려고 하면 그게 수준인 것”이라고 적었다.

구독자 126만 “웬만한 현역보다 영향력 셀 것” 

지난 1월 유튜브 방송 '신의한수'에 출연한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 [신의한수 유튜브 캡쳐]

지난 1월 유튜브 방송 '신의한수'에 출연한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 [신의한수 유튜브 캡쳐]

6선의 김무성 의원이 “지금까진 참았는데 앞으로는 싸우려 한다”며 ‘보수 유튜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뒤집어 보면 보수 유튜브 채널의 몸집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들 채널은 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결집한 ‘아스팔트 태극기 여론’을 등에 업고 주가를 올렸다.

과거 인터넷 언론사를 운영했던 신혜식씨가 대표로 있는 ‘신의한수’가 대표적이다. 13일 기준 국내 정치 유튜브 채널 중 가장 많은 구독자(123만 명)를 거느리고 있다. 누적 조회수는 8억 회를 넘었다. 진성호 전 한나라당(통합당의 전신) 의원이 운영하는 ‘진성호 방송’(86만명), 정규재 전 한국경제 주필이 대표로 있는 ‘펜앤드마이크TV’(65만명), 강용석 변호사와 김세의 전 MBC 기자를 앞세운 ‘가로세로연구소’(58만명) 등도 주요 채널로 꼽힌다. 당내에서 “웬만한 현역 의원들보다 훨씬 영향력이 셀 것(통합당 보좌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박성중 통합당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10만 구독자 이상의 보수 채널이 50개 정도인데, 10개 정도만 극보수, 태극기의 성향을 띠고 있다”고 분석했다.

황교안 전 대표가 2019년 9월 24일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청년 유튜버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황교안 전 대표가 2019년 9월 24일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청년 유튜버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통합당은 총선 전만 해도 보수 유튜버 모시기에 열심이었다. 통합당 전신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문재인 정권 정책평가 토크 콘서트’를 열고 신혜식씨와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 수사관 등 유튜브 채널 운영자들을 초청했다. 같은 해 9월에는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가 ‘청년친화 정당’을 주제로 성제준씨 등 젊은 보수 유튜버들과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황 전 대표는 올 1월에는 신의한수 방송에 직접 출연했다.

통합당 관계자는 “민주당의 아픈 부분을 꼬집는 방송을 보는 지지자 사이에선 ‘시원하다’는 반응도 나온다”며 “당 외곽의 저격수들과 손을 잡는 게 전략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전했다. 정부·여당에 공세를 펴는 ‘별동대’로 인식했다는 의미다.

“보수 유튜브만 바라보다 중도층 돌아섰다”  

김무성 의원과 이준석 최고위원을 겨냥한 유튜브 방송 '가로세로연구소' 썸네일 이미지. [가로세로연구소 유튜브 캡쳐]

김무성 의원과 이준석 최고위원을 겨냥한 유튜브 방송 '가로세로연구소' 썸네일 이미지. [가로세로연구소 유튜브 캡쳐]

하지만 총선 참패 뒤 당과 보수 유튜브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유튜버들과 손을 잡아서 표가 떨어졌다”는 분석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다. 3선의 한 통합당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결집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유튜버들의 목소리가 과잉 대표돼 중도층이 등을 돌렸다”고 지적했다.

‘사전투표 조작 의혹’은 이런 균열에 기름을 부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까지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홍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거짓 기사를 퍼 나르고 생산하던 일부 유튜버들이 단 한마디 사과 없이 부정선거에 올인하고 있다”며 “코인팔이로 전락하는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보수 유튜버들과 여전히 ‘끈끈한’ 정치인들도 있다. 주로 낙선했거나, 국회 밖에서 활동하는 인사들이다.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 민경욱 의원은 부정투표 의혹 제기에 가장 적극적인 정치인이다. 류여해 전 최고위원은 김무성 의원의 발언에 대해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공격했다. 투표 조작설은 보수 유튜버들도 갈라놨다. 신의한수, 가로세로연구소, 공병호TV 등이 조작 의혹을 제기하자, 펜앤드마이크TV, 조갑제TV 등이 의혹을 반박하면서 구독자들 사이에 댓글 싸움까지 벌어졌다.

지난 4월 23일 펜앤드마이크가 주최한 사전투표 조작 논란 토론회. 왼쪽부터 양선엽 공정선거국민연대 대표, 오동길씨, 최대현 사회자, 이경전 경희대 교수, 이준석 통합당 최고위원. [유튜브 캡쳐]

지난 4월 23일 펜앤드마이크가 주최한 사전투표 조작 논란 토론회. 왼쪽부터 양선엽 공정선거국민연대 대표, 오동길씨, 최대현 사회자, 이경전 경희대 교수, 이준석 통합당 최고위원. [유튜브 캡쳐]

통합당 내 ‘태극기 선 긋기’ 움직임

전문가들은 향후 통합당과 보수 유튜버의 관계가 예전만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학과 교수는 “태극기 부대, 아스팔트 우파로 상징되는 강경 보수와 선을 긋자는 당내 목소리와 무관하지 않다”며 “결별 수준까진 아니겠지만, 적어도 유튜브 등에 휘둘리지 말자는 주장에 힘이 실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당 쇄신을 내세우는 초·재선 당선인 사이에선 보수 유튜브와 거리를 두자는 기류가 강하다. 한 초선 당선인은 “지금은 강경한 목소리에 열광할 때가 아니라 패배 원인을 곱씹고 대안을 찾을 때”라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