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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만 전세대출 중단” 신한은행 무리수, 하루만에 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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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아파트가 아닌 주택의 전세대출 중단을 공개했다가 철회한 신한은행. [연합뉴스]

아파트가 아닌 주택의 전세대출 중단을 공개했다가 철회한 신한은행. [연합뉴스]

신한은행이 다세대 빌라와 오피스텔 등에 전세자금대출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당초 계획을 철회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12일 “전세대출이 실수요 자금이고 서민 주거용인 점을 고려해 대출을 중단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출 급증 속도 조절” 내세웠지만 #부실 위험 큰 주택대출 제한 속셈 #고가 아파트 대신 취약층 차별 논란

이에 앞서 지난 11일 신한은행은 가파른 전세대출 증가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며 아파트가 아닌 주택과 오피스텔에 대한 전세대출 중단 방침을 밝혔다. 이 은행은 “전세대출 잔액이 지난해 말보다 2조6622억 늘었다”며 “신규 전세대출 중 아파트가 아닌 주택의 비중은 지난 1월 19%에서 지난달 22%로 증가했다”고 설명했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4월 은행권 전체의 전세대출 잔액은 11조5000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8조1000억원)과 비교해 42% 늘었다.

신한은행의 대출 제한 방침이 공개되자 전세대출 증가세를 억제한다는 명목으로 아파트가 아닌 주택의 대출을 차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히려 아파트의 경우 그동안 전셋값도 많이 올랐고 전세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훨씬 크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을 우선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다세대 주택 세입자의 전세대출을 제한하는 것은 취약계층 보호라는 명목과 거꾸로 가는 것이란 지적이 제기됐다.

전세대출 보증을 제공하는 주택금융공사는 12일 “신용·담보가 부족해 다른 대출을 받기 어려운 사람들이 전세대출을 받게 하는 것이 공적 보증을 공급하는 취지”라는 입장을 신한은행에 전달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다른 은행까지 아파트가 아닌 주택의 전세대출을 줄이면 빌라에 사는 사람은 전세대출을 받기 어려워진다”며 “반대로 아파트에는 전세 수요가 몰려 전셋값이 급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선 신한은행이 겉으로 내세운 이유와 달리 전세대출을 제한하려던 목적은 따로 있다고 본다. 아파트가 아닌 주택의 전세대출은 은행 창구에서 취급하는 데 품이 많이 든다. 또 경기가 가라앉으면 전세대출에 부실이 발생할 위험이 상대적으로 크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을 내줄 때는 집값과 비교해 전세 보증금이 합리적으로 책정됐는지 심사해야 한다”며 “아파트는 표준화된 시세가 있어 심사 절차가 간단하지만 빌라는 시세를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한 집에 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 다가구 주택은 구분등기가 안 돼 있어 세입자 간 보증금 분쟁이 생길 수 있다. 심하면 보증금을 날리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금융학과 교수는 “(신한은행의 대출 제한은) 코로나19 이후 아파트가 아닌 주택의 가격 하락 가능성까지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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