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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들린다" 꾸벅꾸벅 졸던 전두환…"헬기사격 없었다" 부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5·18 때 헬기 사격 없었다”…혐의는 부인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열린 27일 광주지법 정문 앞에서 5·18유족들이 ‘전두환 구속 동상’을 때리고 있다. 오른쪽은 이날 재판에 출석하는 전 전 대통령. [연합뉴스] [뉴스1]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열린 27일 광주지법 정문 앞에서 5·18유족들이 ‘전두환 구속 동상’을 때리고 있다. 오른쪽은 이날 재판에 출석하는 전 전 대통령. [연합뉴스] [뉴스1]

“(5·18) 당시에 헬기 사격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 전 대통령, 13개월 만에 광주법원 출석 #부인 이순자씨 동행…“안 들린다” 도움 #고(故)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한 혐의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27일 광주지법에 출석한 전두환(89) 전 대통령이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또다시 부정했다. 그는 이날 부인 이순자(81)씨와 함께 법정에 들어선 뒤 “안 들린다”며 법정 내 헤드셋(청력보조장치)를 쓴 채 재판에 임했다. 그는 지난해 3월 11일 이후 13개월 만에 광주지법 법정에 다시 섰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인 인정신문에서는 부인 이씨의 도움을 받아 생년월일과 주소 등을 묻는 말에 “맞습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재판이 길어지자 앞서 출석한 재판 때처럼 꾸벅꾸벅 졸았다.

전두환 회고록과 골프를 치는 전두환 전 대통령. [중앙포토]

전두환 회고록과 골프를 치는 전두환 전 대통령. [중앙포토]

"조비오 신부는 거짓말쟁이" 피소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이 2017년 4월 펴낸 『전두환 회고록』을 통해 ‘조 신부는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했다가 기소됐다. “(5·18 당시인)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생전에 증언한 조비오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이날 “5·18 당시 헬기 사격과 관련해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검찰 측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그는 “내가 알고 있기로는 (5·18) 당시에 헬기에서 사격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 헬기에서 사격했다면 많은 사람이 희생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80년 5월 광주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다. 피고인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알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는 검사 측 물음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는 자신의 법률대리인인 정주교 변호사가 “조비오 신부의 5·18 기간 헬기 사격 목격 증언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영상·사진 자료를 제시할 때는 유심히 화면을 바라보기도 했으나 이내 고개를 가누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5·18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27일 광주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5·18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27일 광주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앞선 재판 "왜 이래"…이날은 침묵 

 앞서 그는 이날 재판을 앞두고 “왜 5·18에 대해 책임지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법원으로 들어갔다. 지난해 3월 재판 당시 “왜 이래?”라며 불만을 표현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이날 “수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왜 책임지지 않는가”, “이렇게나 많은 죄를 짓고도 왜 반성하지 않는가”라고 묻는 취재진을 외면한 채 법원으로 향했다.

 5·18 단체들은 이날 재판을 맞아 5·18 희생자에 사죄를 촉구하는 집회를 했다. 이들은 전 전 대통령이 광주지법에 도착하자 “전두환은 역사와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 “전두환의 전 재산을 환수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5월 단체 중 5·18 유족회원들은 이날 상복을 입고 검은 마스크를 쓴 채 침묵시위를 했다. 당초 5월 단체들은 이날 시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열린다는 점을 고려해 1~2m 이상 떨어져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열린 27일 광주지법 정문 앞에서 5·18유족들이 이른바 '전두환 구속 동상'을 때리고 있다. [연합뉴스]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열린 27일 광주지법 정문 앞에서 5·18유족들이 이른바 '전두환 구속 동상'을 때리고 있다. [연합뉴스]

전두환 구속 동상…망치 퍼포먼스

 5·18단체들은 또 지난해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설치했던 '전두환 구속 촉구 동상'을 이날 광주지법 앞에 설치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플라스틱 망치로 동상을 내리치며 재판부에 구속을 촉구했다.

 조비오 신부의 유족인 조영대 신부는 “거짓은 언젠가 드러난다. 광주와 5·18 피해자 앞에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빌길 바란다”며 “새 재판장이 수많은 증거와 증언을 기초로 공정하게 판결을 내리길 바란다”고 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11일 이후로는 건강상의 이유로 불출석 허가를 받아 줄곧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월에 이어 지난해 11월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민적인 공분을 샀다. 지난해 12월 12일에는 40년 전 발생한 12·12를 맞아 1인당 20만원이 넘는 호화 오찬회동을 한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공판기일 열린 27일 광주지법 앞에 경호를 위한 경찰 병력이 배치돼 있다. [뉴스1]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공판기일 열린 27일 광주지법 앞에 경호를 위한 경찰 병력이 배치돼 있다. [뉴스1]

재판부 변경…인정신문 다시 출석 

 이날 공판 준비기일은 전임 재판장의 총선 출마로 인해 재판부가 변경되면서 다시 이뤄졌다. 앞서 신임 재판장인 김정훈 부장판사는 지난 6일 공판 준비기일을 다시 열고 이날 전 전 대통령이 인정신문에 출석하도록 했다.

광주광역시=최경호·진창일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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