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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2020년 국채보상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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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복지행정팀장

하현옥 복지행정팀장

“읍내에 거주하던 정씨 부인이 은가락지 한 쌍을 냈다.”

201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에 실린 내용이다.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대한제국이 일본에서 빌린 돈(차관) 1300만원을 국민이 갚자는 운동이다. 경제 예속을 막으려 전 국민이 담뱃값을 아끼고 패물을 내 나랏빚을 갚는 애국운동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됐던 ‘금 모으기 운동’과 궤를 같이한다.

도로와 학교 등을 지으려 일본에서 관세 수입을 담보로 ‘강제로 빌린’ 차관 1300만원은 당시 대한제국 1년 국가 예산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경제를 파탄 내려던 일본의 야욕에 대한제국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이를 막기 위해 고종부터 관료, 민족자본가와 지식인, 부녀자까지 전 국민의 25%가 참여했지만 일본의 계략으로 실패했다.

113년의 세월을 넘어 국채보상운동이 재소환됐다. 가구당 최대 100만원까지 지급하는 긴급재난지원금 논란 속에서다. ‘곳간지기’인 기획재정부의 반발에도 정부는 ‘자발적 기부’ 조건을 추가하며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키로 결정했다. 늘어나는 상위 30% 지급액(4조6000억원)은 국채를 발행해 조달키로 했다. 이에 따라 2차 추가경정예산 규모도 14조원으로 늘게 됐다. 자발적 기부를 위한 세액공제(15%) 방안도 옵션으로 따라붙었다.

그러자 김재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 지난 22일 “국채를 발행해 (자발적 기부로) 어떻게 갚겠다는 것인지, 기부금을 모아서 국채보상운동을 하겠다는 건가”라며 “돈 받아서 기부하고, 그걸 세금 깎아주면 도대체 무슨 돈으로 국채를 갚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돈만 왔다 갔다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여당과 정부는 “상위 30%는 긴급재난지원금 신청하지 않거나 기부했으면 좋겠다”며 “‘제2의 금 모으기 운동’을 기대한다”고 했다. ‘전 국민 지급’이란 총선 공약을 지키려 빚잔치를 할 수밖에 없자, ‘자발적 기부’라는 명분으로 생색만 내고 돌려받겠다는 의도로 비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미명 아래, 할인율 85%의 ‘자발적 세액공제 깡’을 할 판국이다. ‘사실상 강제적인 자발적 기부’의 목적지는 ‘정부 협찬’인 셈이다. ‘2020년판 국채보상운동’이다.

하현옥 복지행정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