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 위반' 고발한 서울시…정작 그들은 회식에 성폭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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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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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상황이 엄중한 시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서울시 직원의 성폭력 사건 발생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지난 24일 오후 2시 김태균 서울시 행정국장은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전날 불거진 박원순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의 성폭력 혐의에 관한 입장 발표였다.

[취재일기]

박 시장이 “서울은 어떤 도시보다 감염 위험이 높아 서울시는 그동안 과잉대응, 선제적 대응을 해왔다”며 “바이러스 방역뿐 아니라 민생 방역에도 선제적이고자 한다”면서 ‘자영업자 생존자금 지원책’을 발표한 지 불과 하루 만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 A씨는 21대 국회의원 선거 전날인 지난 14일 오후 11시쯤 친목 모임이 끝난 뒤 여성 동료에게 성폭력을 가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시는 23일 언론에 사건이 보도되자 A씨를 업무에서 배제하고 이튿날 경찰의 수사 개시 통보가 접수된 뒤 정식으로 직위해제 처분을 내렸다.

서울시의 사과에도 이번 사건은 여러모로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시청 직원이 성폭력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는 점과 상대가 동료 직원이라는 점이다. 이뿐 아니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인 시점에서 모임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 시장은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진 이후 꾸준히 페이스북 등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해왔다. 더구나 14일은 총선을 앞두고 방역당국이 잔뜩 긴장해서 감염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던 때다. 한 시민은 성폭력 사건 관련 기사 댓글에서 “서울시가 사회적 거리두기 하라고 벌금 물리고 고발하고 그랬는데 서울시가 이런 일에 대해 벌금을 물리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감염 예방 차원에서 구내식당도 시간대를 나눠 운영하고 모임 자제 권고를 하긴 했지만 소규모 모임에 방역과 관련한 책임을 묻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A씨가 박 시장 비서실 직원이며 몇 년 전부터 의전 업무를 해왔다는 점에서 박 시장의 직원 관리 소홀 책임도 도마 위에 올랐다. 박 시장은 이 사건이 알려진 뒤 다음날 출연하기로 한 라디오 인터뷰 일정을 취소했다.

이 사건이 알려진 날 오전 부산에서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부하 직원 성추행 사실을 공개하며 사퇴했다. 연달아 터진 지자체의 성 비위 관련 문제에 공직기강 해이, 공직사회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실이 공개한 ‘2018 인권침해 결정례집’에 따르면 2018년 시정 권고가 내려진 서울시 공무원 인권 침해 사례 32건 가운데 직장 내 성희롱이 18건으로 가장 많았다.

서울시는 입장 발표문에서 “공직자들이 솔선수범해야 할 기간에 이런 일이 발생한 점에 대해 매우 뼈아프게 생각하고 있다”며 성 비위 관련 무관용 원칙과 일벌백계, 성폭력 교육의 실효성 점검을 약속했지만 뒤늦은 조처라는 비판이 일었다.

서울시는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과잉대응, 선제적 대응을 말로만 하지 말고 느슨해진 내부조직 기강부터 바로잡는 게 우선이다.

최은경 내셔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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