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총선 뒤 사퇴' 약속, 野는 선거법 위반이라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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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돈 부산시장이 여성 공무원을 성추행한 책임을 지고 23일 시장직을 사퇴했다. 뉴스1

오거돈 부산시장이 여성 공무원을 성추행한 책임을 지고 23일 시장직을 사퇴했다. 뉴스1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사퇴 시점을 놓고 정치권의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총선 8일 전인 지난 7일 발생한 성추행 사건을 총선 이후인 지난 23일 발표하고 사퇴했기 때문이다. 아예 “4·15 총선 이후에 사퇴한다”는 문서를 만들어 이를 공증받았다는 논란도 불거졌다.

이 때문에 야당은 ‘민주당과 오 시장이 총선에서 여당에 불리한 결과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계획적으로 사건 공개를 미룬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 같은 행위가 실제로 있었다면 ‘선거개입’에 해당한다는 의견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총선 전 터졌으면 부산 결과가 바뀌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도 24일 BBS라디오 ‘이상휘의 아침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행자로부터 “총선 전에 만약에 이 사건이 불거졌으면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을 받자 “부산 지역에서 그렇지 않아도 (민주당이) 의석을 잃었지 않았느냐”며 이 같이 말한 것이다.

이는 부산 지역의 특수성에서 비롯된다.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부산에서 가져간 3석은 모두 2%포인트 이내의 초접전지다. 부산 사하갑 최인호 당선자는 0.87%포인트, 남을 박재호 당선자는 1.7%포인트, 북강서갑 전재수 당선자는 2%포인트 격차로 승리했기 때문이다. 막판 사전투표에서 역전을 허용해 불과 1430표 차이로 박재호 민주당 당선자에게 패한 이언주 통합당 의원은 지난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런 엄청난 일이 왜 총선이 끝난 후에야 드러난 걸까요? 혹 총선에 영향을 미칠까 봐 민주당에서 누르고 있었던 게 아닙니까”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부산 남구을에 출마해 당선된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이언주 미래통합당 후보 [박재호 당선인 페이스북, 연합뉴스]

부산 남구을에 출마해 당선된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이언주 미래통합당 후보 [박재호 당선인 페이스북, 연합뉴스]

이에 따라 조수진 미래한국당 대변인도 지난 23일 입장문을 통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KBS 보도에 따르면 오거돈 시장은 부산시 공무원들과 함께 이달 초부터 피해 여성과 사퇴 여부에 대한 협상을 해왔다”며 “선거 중립의 의무와 관여 금지 의무가 있는 부산시장과 공무원들이 총선을 감안해서 피해자 측에 오거돈 시장의 사퇴 시기를 총선 이후로 제안하고 협상한 것은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상당하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관련 법 조항 있지만…"실제 처벌 어렵다" 의견 많아

야당에서 꺼내 든 조항은 공직선거법 85조인 공무원 등의 선거관여 등 금지다. 이 조항은 공무원 등 법령에 따라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직무와 관련하여 또는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다고 명시한다. 해당 조항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실제 처벌은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설사 선거 전에 이러한 폭로가 나왔다 할지라도 상식적인 차원의 ‘악재’일 뿐 선거에 영향을 주는 행위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설사 민주당이나 부산시 공무원들이 다수 관여했다고 가정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대법원 연구관을 지낸 선거법 전문가 황정근 법무법인 소백 대표변호사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는 아니다”며 “적극적으로 선거에 관여하는 어떤 행위를 한 것도, 행위를 할 의무가 있는 행위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선거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기 위한 행위’로 판단하는 것이 맞다는 취지다.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합쳐 달라“는 박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을 공개했을 때도 선거법 위반 논란이 불거졌다. 임현동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합쳐 달라“는 박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을 공개했을 때도 선거법 위반 논란이 불거졌다. 임현동 기자

검찰 공안통 출신인 변호사는 “초접전지가 많은 부산 선거에 좋지 않은 영향을 가져왔을 것이란 생각은 추리는 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선거에 개입하려는 적극적인 행위가 있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짚었다. 성추행이 없었다고 사실관계를 조작하거나 꾸며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개입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부산이 다른 지역에 비해 초접전지가 많아 결과가 많이 뒤바뀔 것이란 가정은 추측일 뿐”이라며 “오 시장은 지자체장으로서 일종의 ‘선거관리’의무가 있기 때문에 꼭 민주당의 선거 승리를 위해서 시점을 미뤘다고 보기도 어렵다고”고 했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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