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신의 선물' 막은 죄…美 신약개발국장 "보복 해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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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브라이트 미 보건부 바이오의약품첨단연구개발국 국장이 22일 "트럼프 대통령이 '만병통치약'으로 홍보한 하이드록시 클로로퀸의 사용을 제한하고, 제조업체 예산 지원에 반대한 데 보복 해임을 당했다"고 폭로했다.[트위터]

릭 브라이트 미 보건부 바이오의약품첨단연구개발국 국장이 22일 "트럼프 대통령이 '만병통치약'으로 홍보한 하이드록시 클로로퀸의 사용을 제한하고, 제조업체 예산 지원에 반대한 데 보복 해임을 당했다"고 폭로했다.[트위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의 선물'이라고 부른 하이드록시클로로퀸 사용을 반대한 정부 백신 개발 책임자가 해임된 것으로 22일(현지시간) 드러났다. 이 약을 투약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의 사망률이 먹지 않은 환자보다 두 배가 넘는다는 연구 결과에 이어 파문이 확산하는 셈이다. 트럼프 본인은 "그에 관해 결코 들어본 적 없다"고 인사 개입을 부인했다.

브라이트 국장, 보직해임후 연구소 좌천, #"하이드록시클로로퀸 사용 반대에 보복, #정치적 연줄로 업체에 예산 지원 압력도" #"투약 환자 사망률 2배" 이어 파문 확산 #트럼프 "한 번도 들은 적 없어" 개입 부인

릭 브라이트 미 보건부 바이오의약품첨단연구개발국(BARDA) 국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어제(21일) BARDA 국장과 보건부 부차관보 직에서 해임돼 국립보건연구원(NIH) 한직으로 좌천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전출은 코로나19를 치유하려면 과학적 가치가 없는 약이 아니라 안전하고, 과학적으로 검증된 해법에 의회가 배정한 수십억 달러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따른 대응 조치"라고 설명했다. "나는 치명적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해선 정치와 연줄이 아니라 과학이 길을 인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고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에 대한 "신의 선물""기적의 치료제"라고 극찬했던 항말라리아제 하이드록시클로로퀸. 하지만 최근 미 전역 보훈병원 환자 368명에 대한 연구에서 이 약을 코로나19 치료제로 복용한 환자 27.8%가 숨진 반면 복용하지 않은 환자는 11.4%가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에 대한 "신의 선물""기적의 치료제"라고 극찬했던 항말라리아제 하이드록시클로로퀸. 하지만 최근 미 전역 보훈병원 환자 368명에 대한 연구에서 이 약을 코로나19 치료제로 복용한 환자 27.8%가 숨진 반면 복용하지 않은 환자는 11.4%가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AP=연합뉴스]

브라이트 박사는 인플루엔자 백신 전문가로 질병통제센터(CDC)와 제약사 노바백스 부사장을 거쳐 2010년부터 BARDA 인플루엔자(독감) 및 신생 전염병 책임자로 일했다. 2016년에 BARDA 국장을 맡아 왔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인정하는 이 분야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성명에서 "나는 모든 경력을 백신 개발에 바쳐왔고 이때까지 코로나19와 싸우는 데 가용한 최고의 과학에 투자하려는 정부 활동을 이끌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정치적 연줄이 있는 사람들이 홍보한 위험한 약품에 돈을 대는 걸 반대했고 특히, 잘못된 지시를 거부하고 정부가 만병통치약으로 홍보한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클로로퀸의 광범위한 사용을 제한했다"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나는 그에 대해 들은 적이 없다"며 직접 개입을 부인한 뒤 "그가 강제 해임을 당했다고 하는 데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나는 그에 대해 들은 적이 없다"며 직접 개입을 부인한 뒤 "그가 강제 해임을 당했다고 하는 데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AP=연합뉴스]

"검증 안 된 약을 미국의 대중들에 공급하는 걸 막는 것은 옳은 일이며, 이 약은 최근 연구에서 많은 사망자가 관찰된 것을 포함해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다"라며 "불행히도 이것이 보건부 정치 수뇌부와 충돌을 불렀다"고 덧붙였다.

그는 "보건부 감찰관에 이 행정부가 BARDA 업무를 정치에 개입시키고, 나와 다른 양심적 과학자에게 정치적 연고가 있는 회사에 돈을 대도록 압력을 가한 데 관한 조사를 요청할 것"이라고 했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 제조업체에 대한 수뇌부의 예산 지원 압박에 대한 공식 조사를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CNN은 이 수뇌부가 알렉스 에이자 장관과 밥 캐들렉 차관보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브라이트 박사가 브렛 캐버노 대법관 성추행 피해 의혹 여성을 변호했던 내부 고발 전문 변호사를 선임해 법적 조치에도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변호인단은 "(법무부) 특별검사실에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인사 조치 유예를 요청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인사에 개입했느냐는 질문에 "나는 브라이트 박사에 대해 결코 들어본 적 없다"며 "강제 사직당했다는 데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가 수십 년 전 말라리아 치료제로 개발한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신의 선물""게임 체인저"라고 홍보한 건 트럼프 본인이었다.

지난달 21일 트위터에 "하이드록시 클로로퀸과 항생제 아지트로마이신(화이자)을 함께 복용하는 건 의학사 최대 게임 체인저가 될 실제 가능성이 있다"고 적었다. 같은 달 23일 브리핑에선 복용 후 회복한 환자의 사례까지 들면서 "신의 선물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최근엔 언급이 급격히 줄었다. 심장병과 당뇨병 같은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에 상태를 악화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면서다.

최근 국립보건연구원과 버지니아 의대가 후원한 연구에선 전국 보훈병원 입원환자 368명 중 하이드록시 클로로퀸 투약자는 27.8%, 하이드록시 클로로퀸과 아지트로마이신을 함께 복용한 경우 22%가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두 약을 투여하지 않은 환자 중 사망자는 11.4%였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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