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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이탈리아인이 ‘프랑스 만세’를 외쳐 성공한 오페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22)

도니체티가 1840년 발표한 오페라 〈연대의 딸〉에서도 갓난아이 때부터 연대(부대의 상급단위)의 술피스 중사를 비롯한 병사들에게 키워진 아가씨 마리가, 귀족인 친어머니를 되찾고 가문에 맞는 예법을 배우느라 좌충우돌합니다. 그 과정에서 토니오와 사랑에 빠진 그녀의 러브스토리가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펼쳐지지요.

〈연대의 딸〉은 이탈리아 작곡가인 도니체티가 파리에 정착한 뒤 엄청난 인기를 얻은 작품으로, 그 비결은 이 작품 안에 있답니다. 바로 프랑스인들에게 애국심을 자극하는 ‘프랑스 만세!’라는 뜻의 노래, ‘Salut a la France’가 오페라 곳곳에서 힘차게 울리기 때문이지요.

막이 열리면 멀리 포성이 들립니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해 항상 불안에 떠는 마을 사람들과 여행 중 발이 묶인 베르켄필트 후작부인이 전쟁이 끝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연대의 딸, 마리. [사진 Flickr]

천둥벌거숭이 같은 연대의 딸, 마리. [사진 Flickr]

전투가 끝났음을 알리는 소식이 전해지고 프랑스군이 나타나는데, 21연대의 딸 마리가 군복을 입고 함께 등장합니다. 그녀는 술피스 중사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데, 어릴 때부터 이 연대에서 자라서 제일 좋아하는 소리도 북소리라고 하네요.

그때 한 청년이 거동수상자라며 잡혀오는데, 그는 사고가 난 마리를 구해주었던 토니오이며 마리를 사랑하여 그녀를 만나고자 부대주변을 어슬렁거렸던 겁니다. 그는 마리와 함께 지내기 위해 연대에 입대하기로 합니다. 마치 〈사랑의 묘약〉의 네모리노처럼, 사랑을 위하여 자신의 자유마저도 구속시켜 버린 것이지요. 마리는 토니오가 자신을 사랑하여 연대에 입대한 것을 알고는 감동하여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요.

후작부인이 술피스와 대화하다가, 자신의 여동생이 프랑스군 장교 로베르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고 죽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자 로베르의 동료였던 술피스가 “그 아이가 마리에요!”라고 알려주지요. 후작부인은 조카를 찾았으니 자신의 성으로 데려가겠다고 합니다.

막 입대가 승인되어 연대마크를 단 토니오가 기쁘게 막사로 뛰어옵니다. 그는 흥분한 듯 아리아 ‘아! 친구들, 오늘은 좋은 날’을 부릅니다. 고음이 수 차례 반복되는, 테너에게는 고난도의 기교가 요구되는 곡이랍니다. 연인인 마리가 있는 연대에 입대하게 된, 신나는 기분을 멋지게 노래하지요. 이 아리아는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불러 대히트를 친 후에 후안 디에고 플로렌스가 완벽히 소화해 박수갈채를 받은 곡이랍니다. 많은 관객이 이 노래를 듣기 위해 극장에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이때 마리가 슬픈 표정을 하고 나타나 연대를 떠나야 하는 사정을 이야기합니다. 아!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요? 방금 전까지 마리와 같이 지낸다는 환희에 젖었던 토니오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리와 함께 떠나고 싶지만, 이제 마음대로 떠날 수도 없는 군인 신분이 되었지요. 마리와 토니오는 안타까운 운명에도 서로 잊지 말자고 울며 노래합니다.

우아한 귀족의 딸이 되었지만 행복하지 않은 마리. [사진 Flickr]

우아한 귀족의 딸이 되었지만 행복하지 않은 마리. [사진 Flickr]

막이 바뀌면서 무대분위기가 확 달라집니다. 우아한 춤곡을 배경으로 후작의 성에서 마리는 성악과 걸음걸이 레슨 중인데, 천방지축인 그녀에겐 모든 것이 힘들답니다. 아빠 같은 술피스 중사가 그녀를 도와주고 있지만, 마리는 왜 그걸 배워야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답니다. 사실 부인은 마리에게 여러 가지 교양을 가르쳐서 독일제국 최고의 공작과 결혼시킬 작정이거든요.

마리는 이모에 의해 자신의 운명이 모두 결정 되어진 상황이 속상하답니다. 보석과 예쁜 옷이 많아도 사랑하는 토니오를 만날 수 없으니 모든 것이 소용없고,연대원들도 그립습니다. 결국 그녀는 행복하지 않은 거지요.

그때 밖에서 경쾌한 북소리가 울리고 21연대의 행진곡이 들려옵니다. 마리는 그들의 등장에 기뻐하며 흥겨운 아리아 ‘프랑스 만세’를 부르고 연대원과의 합창으로 이어집니다.

마리, 술피스와 연대원들이 반갑게 포옹하며 재회하지요. 토니오와 마리도 뜨거운 포옹을 합니다. 후작부인은 술피스에게 따로 자신의 비밀을 고백합니다. 세상에! 사실 마리가 그녀의 딸이었다는군요. 그렇기에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토니오가 아닌, 좋은 가문과 결혼시켜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후작부인의 훅~ 들어온 진솔한 고백에 술피스는 마리를 설득할 것을 약속하지요.

결국 공작과의 예정된 결혼식이 준비되고 성대한 파티가 열립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마리는 후작부인, 아니 어머니에게 안겨 흐느낍니다. 사랑하는 토니오가 곁에 있음에도, 마리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어머니의 오랜 바램을 이뤄드리려 하지요. 마리가 결혼 서명을 하려는 순간, 마음이 변한 후작부인이 그녀를 말립니다. 체면 때문에 딸을 희생 시킬 수는 없다며, 마리가 진정 사랑하는 토니오와의 결혼을 승낙합니다. 모두가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하면서 행복하게 막을 내립니다.

이 오페라는 시작부터 전쟁상황입니다. 허나, 멀리서 포성만 들려올 뿐, 실제 전쟁의 참상을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오페라를 관통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 때문에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군인이 되며,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하여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지요. 무엇보다 진정 위대한 사랑은, 딸의 행복한 인생을 위하여 자신의 지위와 위신을 포기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아닌가요! 도니체티는 아름다운 사랑, 그리고 위대한 사랑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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