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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형 방역 모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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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윤설영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일요일이었던 지난 5일, 중앙일보 도쿄총국이 있는 긴자(銀座)는 흡사 진공도시 같았다. 미쓰코시, 긴자식스 같은 대형 백화점이 휴업을 한 건 물론이고 골목골목 소규모 상점들도 거의 다 문을 닫았다. 긴자 대로(大通り)는 텅 빈 거리가 됐다. 주말 사이 도쿄에서 261명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인구 1350만명의 초대형 도시 도쿄는 급속하게 위축됐다.

도쿄의 확진자 수가 갑자기 늘어난 것 같지만 사실 다른 나라에선 이게 정상이다. 중국, 한국, 이탈리아 등 코로나19가 발생한 나라들은 45도에 가까운 기울기로 초기 감염자 수가 급증한다. 전원 색출 검사와 강력한 외출 금지령을 실시한 뒤, 일정 시기에 접어들면 한국과 비슷한 진정국면으로 들어선다. 그런데 이와는 다르게 완만한 증가 곡선을 보이는 나라가 일본이다. 검사를 선별적으로 하고 있다는 증거다.

일본은 처음부터 중증환자를 막는 쪽에 대책의 무게중심을 뒀다. 어차피 무증상이나 가벼운 증상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80%에 달하니, 중증환자만 선별해서 치료하면 확진자 수도 크게 늘리지 않고 끝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국 우한(武漢)에선 사망자 9명이 나왔을 때, 도시봉쇄라는 강력한 조치를 취했지만, 도쿄는 사망자가 30명이나 나온 지금에서야 긴급사태선언을 준비하고 있다. 경제 대책과 패키지로 발표하느라 시기를 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외출자제 요청이 내려진 지난 5일 도쿄의 긴자 사거리의 텅 빈 모습. [교도=연합뉴스]

외출자제 요청이 내려진 지난 5일 도쿄의 긴자 사거리의 텅 빈 모습. [교도=연합뉴스]

한국이 융단폭격식 검사로 감염병과 싸웠다면, 일본의 믿는 구석은 백신 개발이라고 한다. 아베 총리는 “반드시 백신 개발에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빨라야 내년쯤이라는 게 함정이다.

간과한 건 또 있다. 병원 내 감염이다. 자신이 감염됐는지도 모르는 채 감염자들이 병원을 들락거렸다. 의료 붕괴를 우려해 검사를 제한했는데, 그 바람에 병원이 ‘폭발적 감염’의 온상이 될 판이다. 5일 현재 의사, 간호사 등 의료종사자 총 153명이 감염됐다. 한 병원에서만 147명이 감염됐고, 최소 16명이 사망했다.

다행인 건 시민들의 높은 협조율이다. 강제력 없는 외출 자제 요청에도 도쿄는 단숨에 유령도시가 됐다. 내년에도 볼 수 있는 꽃놀이쯤이야 깔끔하게 포기했다. 후생노동성 조사에선 89%가 “손 소독 등을 철저히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일본형 방역 모델은 일본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코로나19와의 싸움은 일본에선 이제 시작이다. 최종 평가는 코로나19가 종식된 뒤 지켜볼 일이다.

윤설영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