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美항모 SOS···승조원 내리지만, 편지 유출자 색출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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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핵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CVN 71) 함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험에 처한 승조원의 하선을 허용해달라”는 'SOS' 편지를 보낸 데 미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군 수뇌부는 승조원 하선을 조치하면서도 언론에 편지가 유출된 사안에 대해선 대응을 시사했다.

승조원 하선 명령했지만 함장 편지 유출자 색출 나서

지난달 26일 핵항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CVN 71)이 예인선에 끌려 괌에 입항하고 있다. [사진 미 해군]

지난달 26일 핵항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CVN 71)이 예인선에 끌려 괌에 입항하고 있다. [사진 미 해군]

2일 미 군사전문매체 성조지(Stars & Stripes) 등에 따르면 토머스 모들리 미 해군장관 대행은 약 1000명의 승조원이 루스벨트함에서 하선했고, 추가로 약 2700명의 승조원을 오는 3일까지 하선시킬 계획이라고 전날(1일) 밝혔다. 루스벨트함에는 모두 약 4800명이 승선하고 있었다고 한다.

일단 1000여명의 인원만 함정에 남기겠다는 의미다. 현재 항모 승선 인원 중 24%에 대한 검사가 실시돼 이 중 93명이 확진 판정을 받은 상태다.

이 같은 조치는 “전쟁도 아닌 데 수병들이 죽게 내버려 둘 순 없다”고 한 브렛 크로지에 루스벨트함 함장(해군 대령)의 편지가 미 매체에 보도된 지난달 31일 이후 나왔다. 크로지에 함장은 이 같은 내용으로 신속한 승조원 하선을 요구해왔지만 군 수뇌부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다양한 장비가 운용되는 항공모함 특성상 많은 인원이 일시에 배를 떠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함장의 편지가 언론에 공개되고 여론이 들끓자 군 수뇌부가 등 떠밀리는 상황이 됐다. 모들리 장관 대행은 "해군 지휘부는 루스벨트호 사령관과 대처법을 놓고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며 의견 차이를 인정했다.

미군 수뇌부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다. 모들리 대행은 “편지를 작성한 행위에 대한 보복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편지를 외부로 유출한 인원에게는 처벌이 가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편지 유출에 크로이제 함장의 책임이 드러난다면 군의 질서와 규율을 해치는 행위”라고도 했다.

그는 이어 크로이제 함장이 편지에서 승조원들이 불필요한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한 데 대해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그렇게 말한 건 실망스럽다”고 덧붙였다.

하선 조치가 크로이제 함장의 당초 요구에는 미치지 못한 점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크로이제 함장은 편지를 통해 전체 승조원의 10%만 남기고 나머지 90%의 하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미군 수뇌부는 20%가량을 함정에 남길 방침이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지난달 31일 CBS 저녁 뉴스에 출연해 루스벨트함에서 승조원들을 대피시킬 것이냐는 질문에 “아직 거기까지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현재 상황으로서는 코로나19 억제가 목표”라고 말했다.

미 언론은 루스벨트함의 확진자가 최소 150~200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처음 음성 판정을 받았다가도 양성 확진 사례가 나온 경우와 무증상 감염자를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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