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n번방 가해자, 극단 선택말고 자수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최선욱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선욱 사회2팀 기자

최선욱 사회2팀 기자

“일이 커질 줄 몰랐다. 후회한다. 피해자와 가족·친지들에게 미안하다.”

한 남성이 짧은 글을 남기고 27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미혼의 40대라는 것 외에 알려진 얘기는 없다. 그는 텔레그램 대화명 ‘박사’(조주빈·25·구속)에게 돈을 내고 이른바 ‘n번방 성 착취’ 영상을 받아본 사람이다.

조주빈은 유료회원 한명 한명의 신원을 확인하고 돈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회원 명단이란 게 생기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조주빈을 검거한 경찰도 그 명단을 갖고 있다. 경찰은 조주빈의 범죄 수익 금액 파악을 마치는 대로 n번방 이용자들에 대한 수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소지하면 최대 1년의 징역형을 받게 될 수 있다. 벌금형 최고액은 2000만원이다.

이용자 신원 공개를 요구하는 여론이 빗발치고, 다음 수사 수순이 본인으로 향할 것을 직감한 이들에겐 최근 하루하루의 경찰 동향이 자신에게 압박이 될 것이다. 24일 전남 여수에선 자수 뜻을 밝힌 뒤 독극물을 먹고 경찰서를 찾아온 28세 n번방 회원이 조사 중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가는 소동도 있었다. 그는 “n번방 이용자도 처벌하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서 불안해 자수했다”고 경찰에서 말했다.

노트북을 열며 3/30

노트북을 열며 3/30

떠난 사람 본인은 가족·친지에게 미안함을 표현했지만, 극단적 선택 때문에 가족은 더 큰 피해를 입었다. 가족을 떠나 보낸 고통은 물론이고, 법적 절차 때문에 경찰서에 가 진술도 해야 했다.

누군가의 삶을 파괴하는 영상을 돈까지 내면서 보고 즐긴 사람에게 이성적 판단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극단적 선택은 답이 아니다. 유서에 적은 미안함이 본인의 그런 선택으로 해소될 리가 없다.

지금 상황에서 최적의 답은 자수다. 이제 와서라도 피해자에게 미안함을 느낀다면 당연히 해야할 일이기도 하다.

중앙일보가 접촉한 n번방 사건의 한 피의자 김재수(25·가명)씨는 “경찰 압수수색을 당하면서 감추고 싶은 과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게 얼마나 공포감과 심리적 압박을 주는지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극단적 선택도 시도했었다는 그는 “도망가지 않고 수사에 협조하면서 작은 보탬이라도 되는 게 반성을 실천으로 옮기는 일이라 판단했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제2, 제3의 김재수가 필요하다. 조주빈 일당의 추가 범행 여부, n번방 범죄가 다른 메신저로 옮겨갔다는 정황 등 수사기관이 확인해야 할 의혹은 아직 많다. 광명을 찾을 수는 없는 자수지만, 자수 말고는 답이 없다.

최선욱 사회2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