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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이 최대800명 코로나 대출심사···"인력 없이 돈부터 풀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명이 하루 200건의 보증심사 서류를 접수하고 있습니다. 만삭인 아내를 두고 집에도 못 가고 일하지만, 고객들은 ‘왜 대출이 빨리 안 나오느냐’고 원성입니다.”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 저금리 대출인 이른바 ‘코로나19 대출’이 실시된 지 한달 반이 지났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곡소리가 나온다. 27일 인천신용보증재단 부천지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황동규(34) 주임은 “보증심사 인력이 2명에 불과해 하루 최대 처리 건수가 30~40건인데, 접수되는 양은 하루 평균 200건이 넘는다. 어떤 날은 800건까지 몰린다”며 “소화할 수 있는 인프라가 없는 상태에서 정부가 너무 빨리 돈부터 풀었다”고 토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에서 코로나19 직접대출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에서 코로나19 직접대출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코로나 대출’은 지난 달 13일 정부가 ‘코로나19 피해지원을 위한 경영안정자금’이란 이름으로 처음 시작했다. 현재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을 통한 직접대출(4등급 이하, 1000만원) ▶기업은행 초저금리 대출(신용 1~6등급, 3000만원 한도) ▶소진공 경영안정자금 대출(신용 4등급 이하, 2000만원 한도)로 나뉘어 시행 중이다. 4월부터는 시중은행을 통한 신용대출(신용 1~3등급, 3000만원 한도)이 추가된다.

“심사업무 지나치게 과중해”

그동안 가장 신청이 집중된 건 경영안정자금이었다. 대출한도가 7000만원으로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27일 2000만원으로 하향조정 발표).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 달 13일부터 이달 23일까지 지역신보에 접수된 보증서 신청 건수는 무려 8만8729건에 달했다. 경영안정자금은 소진공에서 소상공인확인서를 받은 뒤 지역신용보증재단(지역신보)의 보증심사를 거쳐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3단계 과정을 거친다. 신청이 급증하면서 병목현상으로 심사기간만 2개월 넘게 걸린다.

지역신보의 보증심사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부산신보 관계자는 “현재 7개 지점의 총 보증심사 담당 인력은 28명”이라고 전했다. 지점 당 4명꼴이다. 그는 “규정‧기준을 다 완화해서 최대한 심사를 하고 있는데도 평상시 인력으로는 업무가 지나치게 과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3일까지 접수된 보증신청 중 실제 대출까지 이어진 비율은 23.2%에 그쳤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차관(오른쪽 두번째)이 27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소상공인 금융지원 신속집행'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병근 신용보증재단 중앙회장, 조봉환 소진공 이사장, 강성천 중기부 차관, 김용범 기재부 차관,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 기획재정부 제공

김용범 기획재정부 차관(오른쪽 두번째)이 27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소상공인 금융지원 신속집행'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병근 신용보증재단 중앙회장, 조봉환 소진공 이사장, 강성천 중기부 차관, 김용범 기재부 차관,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 기획재정부 제공

27일 기획재정부‧중소벤처기업부‧금융위원회가 개선방안을 내놨지만 인력 대책은 부족하단 지적이 나왔다. 초저금리 대출의 경우 보증심사 업무를 기업은행이 직접 할 수 있도록 했지만, 신용등급이 6등급 이상만 대상이다. 기존 대출업무에 보증심사 업무까지 더해지면서 기업은행도 업무부담이 커졌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대출과 보증심사 서류가 중복되는 부분이 있어 최선을 다해 인력을 동원할 예정”이라면서도 “업무부담이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협력, 정책금융기관 인력 재배치

당장 병목현상을 해소할 해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지역별로 시중은행과 협력하라”고 조언했다. 보증심사 업무를 지역별로 지점을 운영 중인 시중은행에 일부 위탁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자체와 시중은행의 업무 협력 사례도 있다. 앞서 서울시는 25일부터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을 위해 자체적으로 5조900억원의 자금을 푼다고 밝히면서 시중은행과 손을 잡았다. 대출심사 기간을 줄이기 위해 서울시내 신한‧우리은행 564개 지점에 ‘서울시 민생혁신금융전담창구’를 설치해 전담 직원을 배치하기로 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진공은 지역 사정을 속속들이 모르고, 지역신보는 인력이 부족해 심사가 지연된다”며 “지자체가 나서서 시중은행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도 “‘좀비기업’에 대한 우려도 일부 제기되고 있지만, 지금 당장은 대규모 자영업자 도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창구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

25일 오전 대구시 북구 칠성동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대구 북부센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소상공인 대출 상담을 받기 위해 1000여명의 소상공인이 길게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오전 대구시 북구 칠성동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대구 북부센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소상공인 대출 상담을 받기 위해 1000여명의 소상공인이 길게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기간제 인력을 충원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실제 지역신보에선 “퇴직인력이나 기간제 채용을 통해 당장 인력이라도 늘려달라”는 요구가 거세다. 부산신보 관계자는 “중앙회에서 인력충원을 한다고 했지만 아직 부족한 수준”이라며 “숙련기간을 고려하면 최대한 빨리 인력이 충원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 이 경우 보증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남주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다른 정책금융기관 중 인력이 많은 부분을 재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남 교수는 “현재 중소기업보증을 담당하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나 기술보증기금‧신용보증기금 등의 인력을 활용해 당장 문제가 시급한 서민금융에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 대출 후 심사’로 절차 간소화

대출심사 과정 자체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긴급대출이 가능하다고 하니 당장 생계가 어렵지 않은 이들도 전부 심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꼭 필요한 사람의 대출이 늦어진다”며 “대출자 선별작업은 좀 뒤로 미룬 뒤 일단은 시장금리로 다 대출해주자”고 제안했다. 하 교수는 “이후에 코로나 피해여부를 따져서 피해기업은 1.5% 저금리로 대출을 전환하고, 조건이 맞지 않는 경우에는 시장금리를 유지하면 피해기업이 아닌 한 굳이 대출을 받지 않게 돼 선별작업이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자영업자 위한 정책금융 구조개편 필요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향후 정책금융의 구조개편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남주하 교수는 “기간제 인력 채용이나 은행의 협조를 구하는 건 한계가 있다”며 “경제활동인구 중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위한 정책금융의 구조개편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남 교수는 “경제적으로 취약계층인 자영업자가 무너지면 경제적인 양극화가 더 심화될 것”이라며 “현재 국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집중돼 있는 정책금융 인력을 서민금융진흥원, 신보, 소진공 등 소상공인‧자영업자 담당기관으로 재배치하고 규모와 예산을 상시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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