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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한 트럼프, 美 확진 폭증하는데 "부활절 전 경제활동 재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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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폭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부활절 전까지 경제 활동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폭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부활절 전까지 경제 활동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만간 외출 자제령을 풀고 경제 활동을 정상화하겠다고 말했다.

뉴욕 등 주요 도시 영업 중단, 출퇴근 통제 #대량 실직 현실화, 미국 경제 멈춰 서자 #트럼프 "4월 12일부터 경제 활동 재개" #전문가 "섣부른 해제, 발병 증가" 경고

이날 미국 코로나19 확진자는 5만4893명으로 집계됐다. 최근 하루 1만 명씩 넘게 늘면서 세계 2위 이탈리아(6만9176명)를 바짝 뒤쫓고 있다. (한국 시간 25일 낮 12시 존스홉킨스대 집계)

미국 코로나19 감염 사례가 무서운 증가세를 보이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약 2주 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제하고 미국을 다시 정상적으로 가동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이다.

미국 신규 확진자의 60%가 뉴욕 대도시권(뉴욕시와 인접한 뉴욕·뉴저지·커네티컷주 도시)에서 발생하면서 뉴욕이 코로나 진앙으로 떠올랐다. 코로나19를 피해 다른 주로 이동한 뉴요커 가운데 확진 사례가 잇따라 나오면서 백악관은 최근 뉴욕을 떠난 모든 사람에게 14일간 자가 격리 명령을 내렸다.

"나라 문 다시 열겠다…경제 살려야"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진행한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앞으로 4~5개월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러면 나라를 망가뜨리게 될 것"이라면서 "나는 부활절(4월 12일) 전까지 이 나라를 다시 열고 싶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후 열린 백악관 코로나19 브리핑에서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역사적인 전투의 끝이 다가옴에 따라 최종 목표는 지침을 완화하고 광범위한 지역의 문을 여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감염이 최정점을 향해갈 것이라는 전문가 전망과 배치되는 발언이다.

그는 "다음 주 격리 해제 조치를 평가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면 약간 시간을 더 줄 수는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우리는 나라를 다시 열 필요가 있다.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일터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24일(현지시간) 한 여성이 텅 빈 미국 뉴욕 맨해튼 거리를 걷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모든 가게 영업을 중단하고 주민에게 사실상 외출 금지령을 내림에 따라 미국이 멈춰섰다. [EPA=연합뉴스]

24일(현지시간) 한 여성이 텅 빈 미국 뉴욕 맨해튼 거리를 걷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모든 가게 영업을 중단하고 주민에게 사실상 외출 금지령을 내림에 따라 미국이 멈춰섰다. [EPA=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속도를 늦추기 위해 15일간 지켜야 할 대통령 지침'이란 제목으로 모든 외출을 삼가고 집에 머물라는 지침을 발표한 건 지난 16일이다.

이후 뉴욕과 캘리포니아, 일리노이, 뉴저지 등 많은 주가 식당을 비롯해 모든 사업장 영업을 중단시키고 주민 출퇴근도 통제하고 있다.

미국 인구(3억2700만 명)의 40%가량이 사실상 외출 금지에 놓였다. 경제 활동을 비롯해 나라 전체가 멈춰 서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부터 조속한 경제 활동 정상화를 주장해 왔다.

지난 23일 트위터와 백악관 브리핑을 통해 "해법(셧다운)이 문제 그자체(코로나19)보다 더 나빠서는 안 된다"면서 "미국은 곧 영업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나라는 셧다운 하기 위해 만들어진 나라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계절성 독감으로 죽는다", "자동차 사고가 많은 목숨을 앗아가지만, 운전을 금지하지는 않는다"라고도 했다.

백악관 코로나19 대응팀 내 전문가인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장은 24일(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에서 "환자 수가 이렇게 증가할 때는 지침을 완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침을 완화하겠다고 밝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백악관 코로나19 대응팀 내 전문가인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장은 24일(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에서 "환자 수가 이렇게 증가할 때는 지침을 완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침을 완화하겠다고 밝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수면 아래 뭐 있는지 몰라" 

하지만 보건 전문가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완화할 경우 발병이 급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할 경우 미국 보건의료 시스템이 감당할 능력이 안 되므로 발병 곡선을 완만히 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섣불리 중단했다가는 사태가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일정표'에 대해 백악관 코로나19 대응팀 일원인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장은 "날짜를 검토할 수는 있지만 하루 단위, 주 단위로 상황이 변하고 있어서 유연할(flexible)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파우치 박사는 "감염자 수가 확 늘고 있는 지역에서 지침을 완화할 수는 없다"면서도 "미국은 큰 나라이기 때문에 지역마다 상황은 다르다"고 했다.

이어 "상태가 괜찮아 보이는 지역이더라도 완화를 검토하려면 정보가 필요한데 지금은 정보가 없다"면서 "(좋아 보이지만) 표면 아래 뭐가 있는지는 모른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전날 백악관 코로나19 대응팀 조정관인 데버러 벅스 박사도 "코로나19 관련 데이터를 보고 판단한 뒤 대통령에게 의견을 제시할 것"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바이러스보다 경기 침체 사망자 더 많을 것" 

코로나19가 잡히기는커녕 점점 확산하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를 꺼낸 이유는 사실상의 외출 금지령이 경제에 주는 충격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사업장이 문 닫으면서 음식점, 극장, 어린이집, 쇼핑몰 등에서 대량 해고가 시작됐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코로나19와 그로 인한 비즈니스 폐쇄 여파로 미국 실업률이 30%대로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2월 미국 실업률은 3.5%였다.

오는 11월 대통령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로서는 경제가 가라앉는 게 코로나19 못지않게 우려되는 상황이다. 트럼프는 경기 침체가 코로나19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주장까지 폈다.

23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경제가 나쁘면 불안감과 우울증, 자살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서 "(경기 침체로 인한) 사망자가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보다 훨씬 많을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우리는 경제와 국민 건강, 두 가지를 모두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 생명을 지키겠다고 경제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미국 뉴욕 퀸즈의 한 병원 앞에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 뉴욕 퀸즈의 한 병원 앞에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EPA=연합뉴스]

뉴욕에서 1000명 중 1명 감염

24일 현재 미국 코로나19 환자 5만3660명 가운데 절반(2만5681명)은 뉴욕에서 나왔다. 백악관 코로나19 대응팀 일원인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감염병 연구소장은 24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뉴욕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면서 "인구 1000명당 1명꼴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미국 내 다른 지역 감염률의 8~10배에 이른다.

미국 내 코로나19 환자의 56%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지역에서 나왔다고 백악관은 밝혔다. 신규 감염자의 60%가 이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미국 전체 사망자의 31%를 차지한다.

뉴욕이 코로나 핫스팟이 되면서 뉴요커들이 이곳을 빠져나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악관 대응팀 일원인 데버러 벅스 박사는 "뉴욕 거주자나 방문자 구분 없이 최근 뉴욕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사람들은 모두 14일간 자가 격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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