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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보고 감상문 써라···"온라인 강의, 등록금 아깝다" 분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7일 서울대입구역 근처 카페. 대학생들이 원격 강의를 듣고 있다. [뉴스1]

17일 서울대입구역 근처 카페. 대학생들이 원격 강의를 듣고 있다. [뉴스1]

한국외대 베트남어과 신입생인 A씨는 '베트남어 왕초보'다. 대학에서 기초 단계부터 배우려 마음을 먹고 택한 학과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수업 초반 2주는 자율학습으로 베트남어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A씨는 19일 기자에게 "수업 교재로 쓸 문서 파일이 온라인에 올라온 게 전부"라며 "베트남어 기본 지식이 거의 없는 신입생인데 자습으로 학기를 시작한다니 황당하다. 등록금이 너무 아깝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온라인 개강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이 그치지 않고 있다. 등록금 일부를 돌려받아야 한다는 요구까지 나온다. 한국외대 노어노문학과 4학년 이유진(23)씨는 “교수들도 처음 겪는 사태에 혼란스러운 건 이해한다”면서도 “어떤 과목은 수업 1시간 전까지 어떻게 진행하겠다는 공지가 하나도 안 올라오는데 너무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3학년 허지우(21)씨도 비슷한 불만이다. 그가 현재 수강 중인 한 수업은 지난해 제작한 강의 영상을 재활용하고 있다. 허씨는 “그마저도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아 수업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TV 감상문 쓰라”

연세대에선 한 TV 다큐멘터리 영상을 올려놓고 감상문을 쓰는 것으로 수업을 대체하는 사례가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학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에브리타임’에서 한 연대생은 “돈을 준다고 해도 안 볼 다큐인데 이걸 왜 보고 감상문까지 써야 하는지 교수한테 따지고 싶다”고 했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일부 교수는 그냥 책을 읽기도 하는 식으로 온라인 강의를 한다고 하는데, 그런 모습에 학생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대학가에선 “등록금 일부를 반환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외대와 경희대 총학생회는 부실 강의 사례를 모은 뒤 입장을 정하기로 했다.

19일 국회 앞에서 시민단체들이 대학들에게 등록금 일부를 반환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국회 앞에서 시민단체들이 대학들에게 등록금 일부를 반환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등록금 일부 반환하라”

반값등록금국민운동본부 등 시민단체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등록금 일부를 반환하라고 촉구했다. 고성우 예술대학생네트워크 운영위원은 “특히 예체능 대학은 등록금에 실습비가 포함돼 다른 단과대학보다 비싸고 그래서 학생들의 피해가 크다”고 주장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천재지변 등의 상황에선 등록금을 면제하거나 감액할 수 있다”며 “지금이 그런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부실 강의 논란에 휩싸인 교수들도 할 말이 있다. 한 교수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학생들의 피드백 없이 수업만 진행하려고 하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대학들이 미리 서버 등의 환경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탓에 온라인 강의가 끊기거나 먹통이 되는 사례도 잇따른다. 16일 서울 권역 대학 10여곳에선 서버가 다운되는 혼란을 겪었다.

온라인 체제 장기화할 수도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들은 이달 말까지만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이후부터는 정상(오프라인) 수업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신종코로나 사태가 잡히지 않으면서 온라인 강의를 연장하려는 대학이 속속 나오고 있다. KAIST와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는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온라인 수업을 무기한 연장하기로 했다. 성균관대는 1학기 전체를 온라인 강의로 할지 검토 중이다.

김홍범·김민중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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