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생긴뒤 배나무 떼죽음···그뒤엔 군청 '불법공사 묵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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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 전남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의 배 과수원. 한 배나무가 이파리를 잔뜩 매단 채 죽어 있다. 영암=김민중 기자

1월 6일 전남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의 배 과수원. 한 배나무가 이파리를 잔뜩 매단 채 죽어 있다. 영암=김민중 기자

전남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에 있는 최명숙씨 배 과수원(면적 2만㎡가량). 2017년 6월 바로 옆에 태양광 발전시설이 들어온 이후 배나무들이 무더기로 죽어가고 있다. 이런 사실이 지난 1월 보도(1월 13일 중앙일보 온라인 기사)된 직후 전남도청은 현장 감사를 벌였고 태양광 발전 공사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던 사실을 적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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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청은 19일 “관련 태양광 발전시설이 당초 허가받은 설계 도면과 다르게 설치되었고 영암군청은 그대로 설계 변경을 해줬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영암군청의 묵인 아래 업체가 태양광 발전기 부지를 3.5m가량 불법 성토(盛土·흙쌓기)했다는 이야기다. 이를 통해 발전기는 발전 효율 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배 과수원 입장에선 “비가 올 때 물이 과수원으로 몰리고 결국 배수 불량으로 나무가 썩을 위험이 크다”고 우려해왔다.

도청은 영암군청의 담당 공무원 A씨(주무관)가 국토계획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책임을 물을 예정이다. 구체적인 수위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영암군청 종합민원 관계자는 “담당 공무원에게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그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A주무관은 “당시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처리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명확한 피해 원인 조사 뒤따라야”

문제는 이런 조치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과수원 주인 최씨는 “힘없는 말단 공무원 한 명한테 책임을 떠넘긴다고 과수원은 뭐가 달라지나”라며 “배나무들이 왜 죽어가는지 정확한 원인 조사를 하고 그에 따른 피해 보상을 해달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피해 원인을 조사한 기관은 농촌진흥청 한 곳 정도다. 진흥청은 1차 조사에서 “태양광발전 시설과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가 추가 조사에서는 태양광 발전시설과의 연관성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피했다. 최씨는 “분쟁 당사자인 내가 스스로 밝혀야 할 문제라고 하는 곳도 많았다”며 “대학(서울대·순천대 등)에도 조사를 요청해봤는데 개입하기를 꺼렸다”고 밝혔다. 기관들이 태양광 사업을 밀고 있는 청와대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게 최씨의 추측이다.

국가가 뒷짐을 지는 사이 최씨와 관련 태양광 업체는 법적 다툼(민사 소송)을 벌이고 있다. 업체는 “분쟁에 따른 재산상 손해가 크다”며 “우리도 피해자다”고 주장 중이다.

최명숙씨가 영암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든 피켓. 영암=김민중 기자

최명숙씨가 영암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든 피켓. 영암=김민중 기자

“3년간 꿈쩍 않더니 이제야…”

최씨는 전남도청의 늑장 대응도 원망했다. 그는 지난 3년가량 동안 수도 없이 국무총리실·도청·감사원 등에 민원을 넣고 영암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을 때 “절차상 문제없다” “중복 민원이기 때문에 처리할 수 없다” 등의 말을 반복해 들었다. 그러다 보도가 나가니 그제야 전남도청이 조금 움직였다는 비판이다.

이에 대해 전남도청 감사 관계자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며 “앞으로는 더욱 민원인의 관점에서 열심히 들여다보고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전국에선 최씨처럼 신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 등) 발전시설 공사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잇따른다. 나무가 떼죽음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사 과정에서 산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갑자기 불도 난다. 수많은 전문가와 야당을 중심으로 “정부는 정확한 실태 조사를 하라”는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정부는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어떻게든 ‘재생에너지3020(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 20%)’ 계획을 달성할 생각만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김민중·이가람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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