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불안’ 조절이 어려운 7가지 이유 … 불확실성·낯섦·리더십 실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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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이 세계인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가 번진 유럽을 탈출하려는 사람들로 미국 공항이 북새통을 이뤘는가 하면, 유럽발 항공권값이 폭등하고 있다. 또 미국‧영국 등에선 식료품 사재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어떤 점이 ‘코로나 불안’을 더욱 키우는 것일까. 최근 미국 건강전문매체 스탯뉴스는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코로나 불안’을 유독 조절하기 어려운 이유 7가지를 분석했다.

⓵의학적 불확실성

어떤 사람이 감염되고 중증이나 사망의 위험이 높은지, 누가 전염시키고 어떻게 예방해야 하는지가 불확실한 점은 공포심을 극대화한다. 바일 라이트 미국심리학회 박사는 스탯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심리학에서 불안감을 유발하는 건 불확실성”이라고 말했다. 메리 알보드 조지워싱턴대 의대 교수도 신종 코로나에 대한 공포를 “불확실성의 불안”이라고 진단했다.

유럽을 탈출해 온 사람들로 지난 15일 미국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이 북적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유럽을 탈출해 온 사람들로 지난 15일 미국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이 북적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실제로 무증상 감염자와 전파자가 발생하는 점이 많은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 신종 코로나가 주로 노년층과 기저 질환자에게 심각한 질병을 초래한다고 알려진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 점도 두려움을 안긴다. 신종 코로나로 인한 이란 내 사망자의 55%가 60대이며, 15%는 40대 미만이다. 또 이들 중 다수가 감염되기 이전엔 건강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네다 굴드 존스 홉킨스대 임상심리학자는 “우리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나약해지는 것”이라면서 “우리 사회는 계획을 세우고, 예측 가능한 것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거대하고 예측할 수 없는 혼란을 겪게 되면서 긴장감이 증폭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⓶낯설다  

사람들이 독감의 높은 치사율은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친숙함’ 때문이라고 스탯뉴스가 전했다. 임상심리학자 굴드는 “독감은 새로운 전염병이 아니고, 매년 발생하며 계절적 측면에서 어느 정도 예측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신종 코로나는 갑자기 등장했기 때문에 낯선 현상이 불확실성과 결합해 불안감을 키웠다는 것이다.

사재기가 극성을 부린 영국 런던의 한 마트 선반이 텅 비어있다. [AP=연합뉴스]

사재기가 극성을 부린 영국 런던의 한 마트 선반이 텅 비어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이런 익숙하지 않은 위험 앞에서 무신경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보다 조심하는 편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라이트 박사는 “불안감은 우리가 전염병을 예방하는 행동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⓷리더십 실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 강대국 지도자들조차 신종 코로나 사태 속에서 ‘리더십 위기’에 직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가 전 세계로 확산 중이었던 지난 10일에도 “코로나는 곧 사라질 것”이란 경솔한 발언을 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하루 뒤인 11일 유럽발 미국 입국을 중단한 데 이어 13일엔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신종 코로나 사태의 여파로 리더십이 흔들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UPI=연합뉴스]

신종 코로나 사태의 여파로 리더십이 흔들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UPI=연합뉴스]

신종 코로나 발원지인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사태를 은폐‧축소한다는 의혹과 비판을 받아왔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호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집단 감염에 미온적인 대응으로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라이트 박사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책임자들은 정확한 정보를 갖고 처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앞으로 그들이 어떤 안심할만한 발언을 해도 믿지 않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⓸전문가 실수  

전염병의 창궐 속에서 전문가의 실수는 더욱 치명적인 불안감을 안긴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당초 지난달 5일 신종 코로나 진단 키트를 주·지방 공공보건연구소에 보낸다고 했다. 하지만 최초 CDC 진단 키트는 부정확한 결과가 나오는 결함이 발견돼 전량 수거해 폐기해야 했다. 이후 CDC는 지난 9일 이후에야 50개 주에 새 진단키트를 보냈다. 그 사이 연방정부와 주 정부는 지역사회 격리와 방역작업을 통해 확산을 예방할 시간을 날린 것이다.

 미국 미시간주의 한 의료인이 지난 16일 신종 코로나 검사 키트를 손에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미시간주의 한 의료인이 지난 16일 신종 코로나 검사 키트를 손에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오락가락하는 감염 예방법도 문제다. 대다수의 전문가가 손 씻기와 더불어 마스크 착용을 권장한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나 정치인들이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 착용이 필요 없다”는 확인되지 않은 발언을 해 혼란을 키웠다. 라이트 박사는 “어떤 면에서는 지도자들과 전문가들의 실수가 신종 코로나 사태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⓹통제 불가능한 일상  

신종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일상을 스스로 정할 수 없게 됐다. 언제 내 직장이나 사업장이 폐쇄될지, 자녀의 학교가 문을 닫을지 알지 못한다.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거의 모든 일이 우리 의지대로 할 수 없게 됐다. 알보드 교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됐다. 이런 통제 불능의 감정에서 오는 불안감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6일 휴교를 마친 일본 시즈오카현 아오이초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앉아 있다. [연합뉴스]

지난 16일 휴교를 마친 일본 시즈오카현 아오이초등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앉아 있다. [연합뉴스]

⓺‘인류 위험=개인 위험’ 동일시   

두뇌는 인류에 대한 위험과 개인의 위험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고 스탯뉴스는 전했다. 국가와 전 세계적 사태와 방역 문제를 개인의 일처럼 불안해하고, 걱정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탈리아 정부가 전국을 봉쇄하는 등의 강력 조치를 취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종 코로나 사태가 정말 심각하구나”하는 불안감을 자극할 수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철도역 앞에서 지난 13일 보호복을 입은 근로자가 소독 작업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탈리아 밀라노의 철도역 앞에서 지난 13일 보호복을 입은 근로자가 소독 작업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⓻의료비 걱정 

스탯뉴스에 따르면 미국에선 감염 공포가 경제적 불안과 만나 시너지를 내고 있다. 최근 한 비영리단체가 미국인 2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8%가 신종 코로나 관련 의료비를 처리할 자신이 없거나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의료비를 지불하기에 충분한 저축을 갖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31%에 불과했다. 미국의 신종 코로나 1회 검사비는 보험이 없을 경우 수백만 원에 이른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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