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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재박의 이코노믹스

‘아마존되다’가 전 세계 기업을 흔들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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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글로벌 플랫폼 거인들의 성공 전략

전 세계적으로 플랫폼 기업이 부상하고 있다. 올해 3월 5일 기준 글로벌 시가총액 상위 10개 업체 중 플랫폼 기업은 애플·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알파벳(구글)·알리바바·페이스북·텐센트까지 무려 7개에 달한다. 불과 10년 전쯤인 2009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 단 2개만 포함됐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판도 변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시가총액 순위 4·8·12위에 위치한 아마존·버크셔 해서웨이·JP모건체이스 3사가 함께 헬스케어 플랫폼 사업에 진출한다고 발표해 커다란 주목을 받고 있다.

막강한 플랫폼 앞세워 시장 삼켜 #‘고객’과 ‘데이터’가 성공 실마리 #신성장 헬스케어 분야 불꽃 경쟁 #시장에 적응 못하면 퇴출 불가피

이들 3사는 2018년 1월 새로운 헬스케어 사업 진출을 발표했으며, 2019년 3월에는 ‘헤이븐(Haven)’이라는 합작사를 설립했다. 헤이븐은 데이터와 기술을 사용해 기존의 복잡한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고,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한다. 총 120만 명에 이르는 3개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시범 서비스를 개시하고, 이후에는 타 기업 고객으로 사업 범위를 넓혀갈 예정이다. 헤이븐 설립을 주도한 아마존은 2018년 6월에는 온라인 의약품 배송 업체인 필팩을 인수해 제약 유통업에도 진출했다.

워런 버핏도 ‘플랫폼’에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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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3개 기업은 모두 헬스케어를 사업 기반으로 삼았던 업체가 아니다. 그럼에도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까지 헬스케어 사업에 진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거대한 시장 규모를 들 수 있다.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의 2018년 12월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헬스케어 산업 시장은 2020년 11조 5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3개사는 막대한 헬스케어 시장 선점을 위해 출범했다는 얘기다.

헤이븐의 최대 강점은 아마존의 강력한 플랫폼 사업 경쟁력과 거대한 고객 기반이다. 플랫폼 비즈니스 분야에서 아마존의 영향력은 위력적이다. 아마존이 진출한 분야의 기존 기업들이 몰락하는 ‘아마존되다(to be Amazoned)’ 현상마저 등장했다. 2011년 미국의 대형 서점 보더스, 2015년 가전제품 유통업체 라디오쉑의 파산에 이어, 2017년에는 세계 최대 장난감 매장 체인 토이저러스가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아마존의 시장 지배력이 결정타였다. 문제는 아마존이 플랫폼 분야에서 쌓은 막강한 역량을 헬스케어 플랫폼 시장으로 확장했을 때다. 과연 아마존이 헬스케어 시장에서 ‘몸 풀기’를 끝내고 ‘실력 발휘’를 시작했을 때, 의료기관·제약 유통사 등 기존의 헬스케어 참가자들이 ‘아마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헬스케어 플랫폼의 또 다른 특수한 사례로 중국의 핑안(平安)보험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아마존은 미국의 4대 테크 기업(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에 속하는 테크 자이언트다. 그러나 핑안보험은 전통적인 보험 산업에서 출발했는데도 헬스케어 플랫폼 사업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1988년 중국 선전의 지방 손해보험사로 출발한 핑안보험은 올해 3월 5일 기준 시가총액이 2072억 달러(약 246조원)로 전 세계 보험사 1위로 급성장했다. 국내 4대 금융지주 시가총액 합계(약 48조원)의 5배를 훌쩍 뛰어넘는다.

핑안보험은 보험으로 시작해 인접 영역인 헬스케어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왔다. 핑안보험이 보유한 중국 최대 건강관리 플랫폼인 ‘핑안 굿닥터’ 가입자 수는 2019년 9월 3억 명을 넘어섰다. 핑안 굿닥터는 의사 수백 명을 포함한 자체 의료진 1000여명과 인터넷 병원 2개를 확보하고 있다. 3000여개 협력 병원 및 3만2000여개 협력 약국과 연계해 온라인 상담, 원격진료와 처방, 병원 예약 서비스를 제공한다. 핑안보험의 가장 큰 경쟁력은 방대한 고객을 보유했을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데이터 분야의 기술력을 갖췄다는 점이다. 연구개발(R&D) 인력만 3만2000명에 달하고 1만8000건의 특허를 바탕으로 인공지능·데이터 분석 기반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데이터 활용이 기업 성패 좌우

아마존과 핑안보험은 전자상거래와 보험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에서 출발했지만, 플랫폼 사업 전략에서는 유사점이 많다. 그 핵심은 ‘고객’과 ‘데이터 기술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들의 플랫폼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이다. 아마존은 마진을 거의 남기지 않는 저렴한 가격으로 고객을 확보했으며, 핑안보험은 간편한 굿닥터 플랫폼을 통해 고객을 끌어들인다. 일단 고객 접점을 확보한 후에는 고객으로부터 창출되는 데이터를 활용해 적합한 서비스를 만들어낸다. 아마존 역시 데이터를 분석해 웹사이트의 사용성을 개선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객 이탈 방지와 확대를 극대화하고 있다.

이같이 글로벌 플랫폼 시장에서 데이터 경제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아마존·핑안보험 사례에서 보듯이 데이터 활용 역량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고 있다. 향후 플랫폼 및 데이터는 기업 경제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의 부(富)를 창출하는 원천이 되면서 미래 국가 경쟁력까지 좌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마침 한국에서도 올해 1월 데이터 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국가 기관에 의료기관에 갇혀 있는 개인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마이 데이터’ 도입으로 플랫폼 사업이 본격화될 수 있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2020년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분석하는 실력이 기업의 가장 큰 경쟁력으로 자리 잡는 원년이 될 것이다.

기존 기업들은 앞으로 플랫폼 사업자나 타 업종과의 데이터 경쟁이 더욱 치열해 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데이터 외에 새로운 고객 접점과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예컨대 플랫폼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나 투자, 다양한 고객 데이터의 본격적인 활용과 분석, 법률 및 규제 변화에 따른 신사업 기회 검토가 필요하다. 국내 플랫폼 기업들 또한 아직은 국내 인터넷과 모바일 시장에서 플랫폼 사업의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다가올 글로벌 플랫폼 자이언트와의 경쟁에 대비해 기존 기업과의 제휴와 협력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

막대한 투자가 ‘플랫폼 자이언트’ 성장 원동력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 플랫폼 기업 또한 단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막강한 플랫폼 자이언트로 부상한 아마존과 핑안보험이 성공에 이르기까지에는 고객 확보와 데이터 기술력 개발을 위한 기나긴 노력과 막대한 투자가 있었다. 아마존은 2018년 2329억 달러의 매출을 거뒀지만 영업이익은 5%인 124억 달러에 그쳤다. 그만큼 대부분의 이익을 기술 개발과 고객 접점 확보에 재투자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핑안보험은 기술 개발을 위해 과거 10년간 70억 달러를 투자했으며, 향후 10년 동안 15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고객을 확보하고 기술을 개발한 플랫폼 기업들은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분야로 사업을 확장할 때 강력한 경쟁력을 발휘한다. 기존 고객군을 기반으로 신규 서비스에서 새로운 고객을 손쉽게 확보함으로써, 유리한 위치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또 플랫폼 기업이 갖춘 고도화된 데이터 기술력은 새로운 서비스에서 경쟁력 향상에 바로 활용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이미 기존 사업으로 수익을 확보한 플랫폼 기업은 신규 사업의 초창기에는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고객 확보와 향후 시장 선점을 위해 끊임없이 투자하며 적자가 나는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

아마존은 e커머스로 확보한 고객과 인프라를 기반으로 클라우드 서비스인 ‘아마존 웹서비스’, 콘텐츠 서비스인 ‘프라임 비디오’, 인공지능 플랫폼인 ‘알렉사’로 끊임없이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핑안보험그룹은 보험에서 확보한 고객을 바탕으로, 헬스케어·자동차·부동산 등 고객의 생활 접점 분야로 플랫폼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조재박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최고경영학(EMBA) 과정을 거쳐 삼정KPMG에서 디지털 본부장과 핀테크 리더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