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청와대 자화자찬 영상 꼬집은 외신기자에 “토착왜구” 댓글 테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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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청와대를 비판한 외신기자가 SNS에서 ‘댓글 테러’를 당했다. ‘X또라이X’ ‘나라 팔아먹을 X’ 같은 성차별적 발언부터 ‘토착왜구’ ‘매국노’ 등의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막말이 넘쳤다. 다른 의견을 인정하지 않는 도넘은 정치 팬덤이 혐오와 분노로 전이되는 모습이다.

해당 기자 “정부 생각 맞추려 편집” #맹목적인 지지층, 민주주의 위협

사건의 발단은 지난 9일 열린 외신기자 정부합동 브리핑이다. 정부의 전염병 대응이 주제였다. 청와대는 13일 기자들의 질의응답을 편집한 4분짜리 동영상을 트위터에 올렸는데, 자화자찬하는 내용이 주였다. 그러자 블룸버그통신의 한국 기자가 영상을 리트윗 하며 비판했다. “그들(한국 정부)의 생각에 맞추기 위해 얼마나 많은 ‘외신기자’들이 잘려나갔는지(cropped out) 궁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외신에서 일하는 한국인은 ‘친일’ ‘친미’ 딱지가 붙으며 배신자·반역자 취급을 당한다”고 썼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코로나 관련 외신의 칭찬 내용은 의료진과 시민들의 성숙한 대응”이라며 “실책 많은 정부가 자신의 공인 양 아전인수 하는 것은 기만”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3월에도 블룸버그의 또 다른 기자가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라고 표현했다 ‘댓글 테러’에 시달렸다. 더불어민주당까지 가세해 “국가원수를 모욕한 매국”(이해식 대변인)이라며 공격했다. 해당 기자는 ‘신상 털기’를 당했고 1년 가까이 휴직 상태라고 한다.

윤성이 경희대 교수는 이런 현상을 ‘분노의 정치학’으로 설명한다. “정치엔 이성과 감정이 공존하는데, 이성이 마비되고 감정이 행동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기성정치가 불안과 공포를 부추기고 특정 사건으로 분노의 ‘트리거(방아쇠)’가 당겨지면 정치적 행동이 나타난다.

탄핵 저지를 위해 비례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민주당의 전략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이 탄핵될 수 있다는 새빨간 거짓말로 위기감을 조성한다”(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적이다. 진 전 교수는 “느슨해진 지지층이 투표장에 갈 명분을 마련해주는 공포 마케팅”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치적 위협 상황에서 분노와 불안은 어떻게 다를까. 제니퍼 러너 하버드대 교수는 “둘 다 외부의 위협으로 형성되지만 자신이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면 분노가 되고, 그럴 수 없으면 불안이 된다”고 설명한다. (『공포와 분노, 위협』)

결국 자신의 참여가 정치를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면 불안의 감정은 분노의 행동으로 진화한다. 예를 들어 친문 강성 지지자들의 의사표현이 민주당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수록 분노의 행동은 더욱 적극적이 된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지지, 금태섭 의원의 낙천처럼 집권당이 강성 지지자들에 끌려가는 사례가 반복될 수록 ‘왝더독(Wag the dog)’ 현상은 심해진다. 이는 물론 ‘박빠’ 등 다른 정치 팬덤도 마찬가지다. 윤 교수는 “감정은 정치적 의사결정의 중요 변수지만 이성과 합리가 꼭 전제돼야 한다”며 “맹목적 지지와 분노의 정치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했다.

지난 11일 미 국무부가 발간한 연례 인권보고서에는 지난해 블룸버그 사건이 주요 사례로 올랐다. 이 보고서는 세계 각국의 각종 인권침해 사례가 수록된 일종의 ‘국가별 인권 교과서’다. 보고서는 “집권여당이 대통령을 북한의 ‘수석 대변인’이라고 표현했다는 이유로 블룸버그 기자를 비난했다”고 기록했다.

윤석만 사회에디터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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