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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이 공적 마스크 약국 배달" 서울시 제안, 정부가 묵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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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마스크 5부제’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 서울시가 ‘공적 마스크를 민간업체가 아닌 자치구를 통해 약국에 공급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정부가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스크를 구하려고 여러 약국을 전전하는 이른바 ‘마스크 난민’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음에도 정책 판단 잘못으로 무산됐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정부 책임론이 일고 있다.

시 “약국에 같은 시간 전달 가능 #대기 줄 사라지고 값도 내려갈 것” #정부 “마스크 정보 앱 보면 된다” #시민들 약국 돌아다니다 울화통

12일 서울시와 구청 등에 따르면 서울 일선 구청장들은 마스크 5부제 시행을 앞두고 “공적 마스크를 일반 유통망이 아닌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약국에 공급, 서울만이라도 같은 시간에 약국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입하게 해 달라”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 8일 정세균 국무총리와 이의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등이 참석한 비공개 회의에서 구청장들의 이 같은 건의를 전달했다. 당시 서울시는 “일반 유통망을 통해 마스크를 공급하면 약국 배달 시간이 달라 시민들의 구입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물류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처장이 “유통업체를 통해 하루에 두 번 약국에 배달하고, 몇 시에 어디서 파는지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하면 불편을 줄일 수 있다”며 불가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공적 마스크 구매 경쟁이 치열한 지역. 그래픽=신재민 기자

공적 마스크 구매 경쟁이 치열한 지역. 그래픽=신재민 기자

정부는 마스크 5부제에 맞춰 지난 10일부터 앱 개발사에 공적 마스크 재고 정보(API)를 제공했고, 지난 11일 10여 개의 공적 마스크 판매현황 알림 서비스에 들어갔다. 하지만 서비스 당일 오전부터 접속자가 몰리면서 장애가 초래됐다. 재고량이 정확하지 않아 허탕친 시민도 상당수였다.

익명을 원한 서울시 관계자는 “공적 마스크를 물류창고에서 직접 각 지자체로 배달하고 지자체가 이를 관할 지역의 약국에 같은 시간에 배송하면 물류비용 절감, 마스크 가격 인하 효과가 나고 약국에서도 동일 시간 판매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민간업체 활용을 고수하면서 (지오영 같은) 특정 업체 특혜 의혹도 나오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공적 마스크와 관련해 서울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일에도 ‘취약계층·선별진료소 등에 마스크 공급을 위해 공적 판매처에 지자체를 넣어 달라’고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26일 마스크 수출 제한 및 국내 생산분 50% 이상의 공적 판매 전환 조치를 취하면서 공적 판매처로 공영홈쇼핑, 약국, 우체국 등을 지정했다. 지자체는 뺐다.

정부가 공적 판매를 시작하면서 서울 7개 구청은 마스크를 구하지 못했다. 서울시도 보건소와 선별진료소 등에 지급할 80만 개 중 절반인 40만 개의 공급 취소 통보를 받았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법률에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감염병 확산 상황에서 마스크와 같은 기초물자 수급의 당사자는 지자체”라며 “서울시 아이디어는 시도해 볼 만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상봉 식품의약품안전처 바이오생약국장은 “지자체를 통해 약국으로 공급하게 되면 전국 유통체계 판을 당장 새로 짜야 해 지금보다 더 큰 혼란이 있을 수 있었다”고 해명했다.

마스크 혼란이 이어지자 지자체들은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성동구는 지난 5일, 9일 이틀에 걸쳐 주민센터를 통해 전체 구민의 40%에게 마스크를 한 개씩 총 12만 개를 지급했다. 노원구는 11일 주민 한 명당 2개씩 각 통·반장을 통해 직접 배부했다.

김현예·황수연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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