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디자인 핵심은 '고요함'…사우나 가는 것도 사색 위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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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간 주한 핀란드 무역대표부에서 일하며 핀란드를 깊숙이 바라보고 이해했던 김윤미 대표가 27일 서울 정동의 자택의 인테리어를 공개하며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사진 속 동그란 유리공예 작품은 글라스 아티스트 카밀라 모레르그의 '도레미2'다. 우상조 기자

23년간 주한 핀란드 무역대표부에서 일하며 핀란드를 깊숙이 바라보고 이해했던 김윤미 대표가 27일 서울 정동의 자택의 인테리어를 공개하며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사진 속 동그란 유리공예 작품은 글라스 아티스트 카밀라 모레르그의 '도레미2'다. 우상조 기자

“핀란드 디자인의 핵심은 ‘고요함’이에요. 핀란드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살펴보면 혼자 있는 시간,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시간을 7:3 비율로 놔요. 그리고는 자연의 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고요와 적막 속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죠. 숲속 사우나 또는 얼음호수에서 낚시를 하는 거예요. 고요의 상실은 인간성의 상실을 가져온다고 믿기 때문이죠. 또 고요함을 대면할 수 있는 사람의 눈과 표현은 장식의 허세를 구분할 줄 안다고 믿죠. 핀란드 디자인 제품들이 극도의 단순한 아름다움을 가진 건 이 고요와 침묵의 힘을 담고 있기 때문이에요.”

핀란드 무역대표부 김윤미 대표 인터뷰 #핀란드 디자이너 45인을 만나 나눈 이야기 엮어 #디자인 책 '디자이너 마인드' 출판 #"핀란드 사람들의 삶의 태도에서 배울 것 많아"

핀란드 디자이너 45인을 만나 함께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책 『디자이너 마인드』를 쓴 주한핀란드 무역대표부 김윤미 대표의 말이다. 김 대표는 23년간 핀란드 산업·문화·관광 콘텐트 기업들의 한국 진출을 도우며 마켓 리포트를 비롯해 홍보, 전시, 채용 업무까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온 한국 내 ‘핀란드 전문가’다.

“소비재 기업들이 한국에 진출할 때 저도 그 기업을 알아야 어떻게 시장 진입을 할지 해결안을 제안할 수 있죠. 그래서 브랜드 공부를 위해 지난 3년간 45인의 디자이너를 만났어요.”

김윤미 대표가 핀란드 디자이너 45인을 만나면서 나눈 이야기를 엮은 책 '디자이너 마인드'. 우상조 기자

김윤미 대표가 핀란드 디자이너 45인을 만나면서 나눈 이야기를 엮은 책 '디자이너 마인드'. 우상조 기자

책 내용은 디자인과 디자이너를 소개하는 여느 책들과는 많이 다르다. 디자이너 프로필 사진과 대표 작품 소개 사진이 들어간 구성은 비슷하지만, 글은 제품 소개보다 디자이너 개개인의 철학과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가득하다.

플라스틱 대체 소재를 연구하는 디자이너, 원목으로 주얼리를 만들면서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디자이너, 윤리적 모피를 사용하는 디자이너, 원목 테이블을 만드는데 새로 나무를 베지 않고 쓰러진 나무를 최소가공해서 사용하는 디자이너 등등.

김윤미 대표의 자택 공간 중 서재 베란다에 놓인 의자. 우상조 기자

김윤미 대표의 자택 공간 중 서재 베란다에 놓인 의자. 우상조 기자

“제가 일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가치 제안’이에요. 기업 입장에서 ‘무엇을 팔아야 할까’보다, 고객 입장에서 ‘내가 왜 이것을 사야 하나’를 더 고민하는 거죠. 흔히 ‘북유럽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과연 핀란드 디자인은 덴마크·스웨덴하고 뭐가 다를까. 핀란드 디자인만의 차별점은 뭘까. 디자이너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고, 그들의 답 속에서 공통점을 찾아냈죠.”

춥고 척박한 자연환경과 부족한 자원으로 힘들었지만, 화려함과 사치를 즐기는 왕족이나 귀족계층도 없었던 핀란드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편리함·기능성·실용성’을 추구해왔다.

23년간 주한 핀란드 무역대표부에서 일해온 김윤미 대표의 정동 자택은 다양한 종류의 핀란드 디자인 제품으로 꾸며져 있다. 우상조 기자

23년간 주한 핀란드 무역대표부에서 일해온 김윤미 대표의 정동 자택은 다양한 종류의 핀란드 디자인 제품으로 꾸며져 있다. 우상조 기자

Limi Chair by Tapio Anttila_Photo by Teemu Toyryla

Limi Chair by Tapio Anttila_Photo by Teemu Toyryla

Periferia sauna stool black_Kari Virtanen_NIKARI_Photo by Studio Chikako Harada.

Periferia sauna stool black_Kari Virtanen_NIKARI_Photo by Studio Chikako Harada.

Nathalie-Linum and Seam Series_photo from Studio Nathalie L

Nathalie-Linum and Seam Series_photo from Studio Nathalie L

김 대표는 바로 이런 성향 때문에 핀란드 디자인의 특징들이 만들어졌다며 대표적인 5가지를 꼽았다. ‘시간을 초월하는 디자인’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 ‘윤리적 디자인’ ‘지속가능한 디자인’ ‘기능적 디자인’이다. 자원이 부족한 만큼 ‘소재’를 깊이 연구했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지구환경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먼저 알게 된 사람들. 내수 시장 규모가 550만 명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다 보니 많이 팔래야 팔 수도 없어 아예 오래 쓸 수 있는 좋은 물건을 만들어야 했고, 그렇게 어쩌다 사는 물건일수록 독창성이 있어야 했다.

Secto Design by Seppo Koho_photo by RKPD

Secto Design by Seppo Koho_photo by RKPD

RIIPPU for HAKOLA, design Samuli Helavuo, photo Katri Kapanen

RIIPPU for HAKOLA, design Samuli Helavuo, photo Katri Kapanen

Suso Chair by Aalto and Aalto_photo from Aalto and Aalto

Suso Chair by Aalto and Aalto_photo from Aalto and Aalto

The Blind Runner_Bjorn Weckstrom_photo by 이눅희. 김윤미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핀란드 디자이너 비욘 벡스트램의 현대 조각 '눈을 가린 채 달리는 사람'이다. 가짜와 거짓, 폭력이 난무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이성적 판단 없이 눈을 감고 달리는 현대인을 형상화한 것으로 인간성 회복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다.

The Blind Runner_Bjorn Weckstrom_photo by 이눅희. 김윤미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핀란드 디자이너 비욘 벡스트램의 현대 조각 '눈을 가린 채 달리는 사람'이다. 가짜와 거짓, 폭력이 난무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이성적 판단 없이 눈을 감고 달리는 현대인을 형상화한 것으로 인간성 회복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다.

“종합해보면 ‘사람과 환경에 주목하고 배려한 디자인’으로 정의할 수 있어요. 이건 단순히 제품 디자인에만 필요한 원칙이라기보다, 삶을 디자인해야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국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통해 메시지를 꼭 전하고 싶었어요.”

김 대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력서를 새로 써볼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핀란드 사람들이 너무 좋기 때문이란다.

“자기들끼리도 ‘여름 핀란드인, 겨울 핀란드인이 따로 있다’고 말하지만(웃음),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순수해요. 조직 내에서도 수직적 갑을관계가 없어서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죠. 1년에 25~30개 기업을 만나 매번 다른 문제에 부딪치고 해답을 찾으며 늘 새로운 걸 공부해야 하는 것도 재미있고요.”

책에는 이 디자이너들과 협업하고 싶은 국내 기업과 디자이너들을 위해 홈페이지 주소도 꼼꼼히 적어 놨다.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 우상조, 김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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