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민·매수자 2억씩 나눠갖기?…판교 공공임대 복등기 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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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판교신도시 산운마을 11단지 공공임대아파트 전경. [중앙포토]

경기도 판교신도시 산운마을 11단지 공공임대아파트 전경. [중앙포토]

2000년대 대표적인 ‘로또’ 신도시로 불린 경기도 성남시 판교신도시가 요즘 시끄럽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저소득층을 위해 공급한 10년 공공임대 아파트 때문이다. 이 아파트는 임대의무기간 10년이 지나면 분양(분양전환)해 소유권을 임차인(입주민)에게 넘겨주는 한시적 임대주택이다.

임대 종료 후 1년 안에 분양 여부 결정해야 #목돈 마련 못한 입주민 "웃돈이라도 챙기자" #차익 노린 매수자 "위험해도 시세보다 싸게"

지난해 9월부터 공공임대 아파트 3952가구의 분양전환이 순차적으로 시작되면서 분양전환 가격을 두고 입주민과 LH 간 갈등이 집단 소송으로 번졌다. 이 와중에 웃돈을 챙기려는 입주민과 차익을 얻으려는 투자수요까지 가세해 복등기(이중등기) 거래까지 등장했다. 판교신도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저소득층 위한 아파트라더니…무슨 수로 목돈 마련해”

갈등은 지난해 11월 10년 공공임대 분양가가 결정되면서 시작됐다. 지난해 7월 원마을 12단지, 9월 산운마을 11‧12단지의 임대기간이 종료되면서 분양전환 가격이 3.3㎡당 평균 2100만~2300만원에 정해졌다. 원마을 12단지 101~118㎡(이하 전용면적)가 8억7427만2000~10억1251만8000원, 산운마을 12단지 55~59㎡가 4억5935만7000~5억737만2000원이다.

분양 대상자인 입주민은 분양전환 가격이 높다고 반발하고 있다. 59㎡형 기준으로 그동안 보증금 6127만원에 월 43만원을 냈다. 분양전환을 위한 목돈을 마련하기 쉽지 않은 형편이다.

입주민들은 LH의 분양전환 가격 책정 기준인 감정평가 방식 때문에 분양전환 가격이 비싸졌다고 주장한다. 분양전환 가격이 2009년 입주 당시 시세보다 2~3배 뛴 금액이다.

입주민들은 10년 공공임대도 5년 공공임대처럼 건설원가와 감정가의 평균으로 분양전환 가격을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LH를 상대로 여러 건의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LH는 “2006년 분양 때부터 모집공고에 감정가를 기준으로 분양전환한다는 내용을 고지했다”며 분양전환 가격 책정 방식을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이다.

LH 관계자는 "감정가가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다"고 말했다. 중소형의 경우 주변 민간 아파트 시세의 60%, 중대형은 80% 수준이다.

산운마을 11단지 59㎡형의 분양전환 가격은 5억1154만원으로, 인근 같은 크기 아파트보다 4억원 이상 싸다. 인근 산운마을 10단지 59㎡형은 지난달 9억6900만원에 거래됐다.

원마을 12단지 115㎡형 분양전환 가격(9억9177만원)도 3억원 이상 저렴하다. 인근 원마을 11단지 115㎡형의 실거래가는 13억6000만원(1월)이다.

“논란 있을 때 싸게 사볼까…복등기 등장”

주변 시세와 분양전환 가격의 틈새를 비집고 복등기 거래가 등장했다. 분양전환이 다급해진 일부 입주민은 시세차익을 챙기려 하고 발 빠른 투자수요는 주변 시세보다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아파트를 사려는 것이다.

입주민은 분양전환 기간(임대 종료 후 1년) 동안 해당 아파트를 분양 받지 않으면 퇴거해야 한다. 원마을 12단지는 오는 9월 15일까지, 산운마을 11‧12단지는 12월 8일까지 분양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후에는 LH가 일반분양할 수 있다.

복등기 거래는 우선 매도자인 입주민과 매수자가 매매 계약서를 작성해 공증을 받는다. 매수자가 분양전환을 위한 현금을 건네면 입주민은 LH에 납부하고 등기를 한다. 이후 바로 매수자 명의로 다시 등기한다.

예컨대 분양전환 가격이 5억원인 59㎡형은 7억~8억원에 거래된다. 매수자는 주변 시세(9억원대)보다 1억5000만~2억원 싸게 아파트를 장만하고 입주민은 2억원의 웃돈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거래 방식은 매수자에게 위험하다. 복등기는 매수자가 등기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매매가 이뤄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 법적으로 입주민은 해당 아파트의 세입자이고 집주인은 LH여서 공증을 받아도 문제가 생겼을 때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예컨대 분양전환을 위해 건넨 현금을 입주민이 다른 곳에 써도 돌려받기 어렵고 해당 아파트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받지 못한다.

판교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각종 규제와 코로나 19 영향으로 매매는 물론 전세 거래까지 끊기면서 사정이 어려워진 일부 공인중개사가 문제의식 없이 이런 거래를 진행하고 있는데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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