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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유가 30% 폭락 '역 오일쇼크'···亞증시 '검은 월요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제유가가 하루 사이 30% 넘게 폭락했다. 이렇게 가격이 빠르게 내려간 건 1991년 걸프 전쟁 이후 처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촉발한 ‘역(逆) 오일쇼크’다. 코로나19에 석유 시장 불안까지 겹치면서 아시아 증시는 ‘검은 월요일’을 맞았다.

코로나19 확산 세계 석유 수요 감소에 #사우디와 러시아 간 치킨게임 겹쳐 #국제유가 30달러로 추락 #91년 걸프전쟁 이후 최대 폭락 #코로나·유가 충격 아시아 증시 급락

지난 8일(현지시간) 두바이 금융시장 내 전광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석유 수요 감소, 산유국 간 감산 합의 불발 영향으로 국제 유가가 급락했다. [AP=연합뉴스]

지난 8일(현지시간) 두바이 금융시장 내 전광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석유 수요 감소, 산유국 간 감산 합의 불발 영향으로 국제 유가가 급락했다. [AP=연합뉴스]

블룸버그에 따르면 8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ICE 선물거래소 개장과 동시에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31.02달러로 추락했다. 하루 전 45.27달러와 비교해 14.25달러(31.5%) 급락했다. 장중 한 때이긴 하지만 낙폭으로는 91년 걸프전 이후 최대다. 29년 전 걸프전 당시 유가는 전쟁 국면에 따라 폭등과 폭락을 거듭했다.

코로나19가 국제 석유 거래시장을 ‘전시(戰時)’상황으로 내몰았다. 코로나19의 전 세계 확산으로 가뜩이나 불안하게 움직이던 석유시장에 사우디아라비아가 결정적 한 방을 날렸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날 국제 석유거래시장이 열리기 직전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 판매 가격을 인하하고 생산량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사우디는 당초 감산을 주장했으나 러시아가 이에 동의하지 않자 ‘몽니’를 부리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얼어붙어 있던 세계 금융시장은 역 오일쇼크라는 충격파까지 맞았다. 아시아 증시엔 9일 개장과 함께 ‘검은 월요일’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날 오전 11시 34분 현재(한국시각)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266.02포인트 하락한 1만9483.73으로 거래 중이다. 6.10% 급락하며 지수 2만 선이 무너졌다. 한국 코스피 역시 전일 대비 86.99포인트(4.26%) 떨어지며 1953.23을 기록하고 있다. 90포인트 가까이 내려가며 간신히 회복한 2000선이 다시 붕괴했다.

미국 텍사스 석유 생산 시설. 8일(현지시간) 원유 가격은 1991년 걸프전 이후 최대 폭으로 추락했다. [AP=연합뉴스]

미국 텍사스 석유 생산 시설. 8일(현지시간) 원유 가격은 1991년 걸프전 이후 최대 폭으로 추락했다. [AP=연합뉴스]

중국 상하이 종합(-2.04%), 선전 종합(-1.74%), 홍콩 항셍(-4.07%), 대만 자취안(-2.74%) 등 아시아 주요 지수는 일제히 하락 중이다.

코로나19로 원유 수요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산유국들이 벌이는 ‘치킨게임’에 국제 석유시장과 아시아 금융시장이 흔들리는 중이다.

지난 6일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 14개국과 러시아 등 10개 주요 산유국의 연합체인 ‘OPEC플러스(OPEC+)’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추가 감산안을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사우디 등 OPEC 회원국은 하루 100만 배럴, 비OPEC 국가는 50만 배럴을 더 줄이자고 주장했지만 러시아는 원유를 감산해봐야 미국 셰일가스 기업만 이득이라며 반대했다.

코로나19 확산과 국제 석유시장 불안으로 9일 아시아 증시에 '검은 월요일'이 닥쳤다. 이날 일본 도쿄 시내 증시 전광판. [AP=연합뉴스]

코로나19 확산과 국제 석유시장 불안으로 9일 아시아 증시에 '검은 월요일'이 닥쳤다. 이날 일본 도쿄 시내 증시 전광판. [AP=연합뉴스]

사우디 정부는 미국과 아시아로 향하는 원유 공급가를 낮추기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다음 달부터 원유 생산량을 기존 하루 평균 970만 배럴에서 1000만 배럴로 늘린다는 계획을 밝혔다. 사우디의 일일 원유 생산량이 1000만 배럴을 넘기는 것은 지난해 5월 이후 처음이다.

사우디 정부는 러시아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 ‘충격과 공포’ 전략을 쓰고 있다고 전문가는 분석했다. 캐나다 은행인 로열 뱅크 오브 캐나다(RBC) 산하 투자회사 RBC캐피털마켓츠는 “OPEC플러스 국가들은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아래에서 움직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사우디의 전략적 행보로 봐야 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러시아가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지 않을 경우 사우디는 공격 수위를 높일 수도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미국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국제유가가 20달러 선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14년과 2016년 사이 석유 가격 급락 파동 이후 천천히 회복 중이던 전체 석유 산업이 다시 타격을 입게 됐다”고 짚었다. FT는 에너지 분야 컨설팅회사 FGE 분석가의 말을 빌려 “이는 모두가 패배할 수밖에 없는, 집단 자살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조현숙ㆍ배정원 기자 newear@joongang.co.kr

역 오일쇼크(逆 oil shock)
석유 파동이라고도 불리는 오일쇼크는 급격한 국제유가 상승이 초래한 경제위기 상황을 뜻한다. 1970년대 초반 중동 전쟁 직후 주요 산유국이 원유 생산과 수출을 제한ㆍ중단하는 방법으로 유가를 급격히 끌어올렸다. 한국을 포함한 석유 수입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 1차 오일쇼크다.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 이란과 이라크 전쟁으로 유가가 다시 폭등하며 2차 오일쇼크가 발발했다. 역 오일쇼크는 이와 반대로 유가가 급락해 경제에 타격을 주는 일을 의미한다. 2014년과 2016년 경기 부진으로 인한 석유 수요 감소, 셰일가스 등 석유 대체재 증산 등을 이유로 역 오일쇼크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걸프 전쟁(Gulf War)
이라크와 미국 등 34개 다국적군이 벌인 전쟁. 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시발점이다. 90년 시작돼 91년 다국적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라크와 쿠웨이트 국경 지대에 있는 대규모 유전을 둘러싼 이권 다툼이 전쟁의 주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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