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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4명 싸워 엄마는 1명 데려나갔다···고덕동 화재 참사 전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5일 오전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화재 피해 주택에서 현장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오전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화재 피해 주택에서 현장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화재로 어린이 3명이 숨진 서울 고덕동 상가주택 안에는 사고 직전 사망자들을 포함한 어린 아이 4명과 이들의 어머니(혹은 이모) 등 총 5명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어머니와 아이 1명이 잠시 외출한 사이에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5일 서울 강동경찰서와 강동소방서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3시2분 강동구 고덕동 상가주택 3층 한 가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4층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에 의해 불은 19분 만에 진압됐지만, 자매(4살, 7살)와 이종사촌(4살) 아이가 숨졌다. 사인은 질식사로 추정된다. 재산 피해는 2300만원가량에 달한다.

화재 직전 집 안에는 사망자 3명뿐만 아니라 자매의 오빠(8)와 이들의 어머니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 4명이 서로 심하게 다퉜고 오후 2시44분 어머니가 자매의 오빠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 18분 후 집에 남겨진 아이 3명이 참변을 당한 것이다. 사고 주택은 아이들의 외할머니 집이었다.

외할머니·외할아버지도 부재중

경찰과 화재를 목격한 주민들에 따르면 화재 발생 3분 뒤 어머니와 그의 아들이 급하게 집으로 뛰어 왔다. 어머니는 “애들을 끌어내 주세요”라고 악을 쓰기도 했다. 아이들의 외할머니는 점심시간부터 부재중이었다. 외할아버지도 사고 당시 밖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럼 사고 당일 왜 아이들이 외할머니 집에 모인 걸까.
자매 등의 어머니가 이사를 앞두고 이삿짐(옷가지 등)을 줄이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외할머니 집을 방문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이에 앞서 이종사촌 집에 들러 이 아이를 픽업해왔다고 한다. 아이들이 비슷한 또래라 서로 놀게 할 목적도 있었다는 게 경찰의 조사 내용이다.

화재현장에 사망 어린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발이 놓여 있다. [뉴스1]

화재현장에 사망 어린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발이 놓여 있다. [뉴스1]

경찰 “신종코로나로 모인 건지는 불분명”

일부 주민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영향으로 아이들이 어린이집 대신 외할머니 집에 모인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만 짐을 가지고 오면 되는데 신종코로나 때문에 아이들까지 데리고 온 게 아니냐는 추측이다. 하지만 경찰은 “그런 사정이 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밝혔다.

사고 다음 날인 이날 오전에는 경찰과 소방당국 등이 합동 감식을 진행했다.
사고 주택 출입문 주위 벽과 바닥에는 그을음이 있었고 탄내가 났다. 현장감식을 지켜본 주민들은 탄식을 쏟아냈다. 이모(77)씨는 “외할머니가 평소에도 유모차를 끌고 다니며 아이들을 지극 정성으로 돌봤는데 이런 일이 터져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인근 미용실 주인은 “외할머니가 평소에 열심히 일하셨는데 왜 이런 분에게 비극이 일어났는지…”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한 공인중개사는 “너무 끔찍한 일이 벌어져 외할머니를 뵈면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기난로 엎어져 바닥에 불 붙었나

경찰과 소방당국은 불이 난 집 안에 전기난로가 있었던 점과 ‘난로가 엎어지고 불이 난 것 같다’는 유족 진술 등을 토대로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화재 감식 결과를 발표할 단계는 아니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감식을 의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부검 여부는 유족·검찰과 협의해 결정할 예정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전기난로가 넘어져 바닥부터 화재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전기난로가 넘어지면 전원을 자동으로 차단하는 안전장치가 돼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여 열에 의해 불이 붙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중·이가람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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