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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 독서 삼매경으로 인터넷 스타 된 중국 코로나 환자

중앙일보

입력

역경은 인물을 낳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출현을 최초로 폭로하고 34세의 젊은 나이로 숨진 리원량(李文亮)과 그보다 50세 많은 8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격전지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으로 달려갔던 중난산(鍾南山) 등이 그렇다.

조용히 병상에 누워 독서 삼매경에 빠진 모습으로 신종 코로나를 이겨내고 있는 사진이 소개되며 39세의 푸 박사는 일약 중국의 인터넷 스타가 됐다. [중국 신화망 캡처]

조용히 병상에 누워 독서 삼매경에 빠진 모습으로 신종 코로나를 이겨내고 있는 사진이 소개되며 39세의 푸 박사는 일약 중국의 인터넷 스타가 됐다. [중국 신화망 캡처]

그러나 이들처럼 유명하진 않아도 자원봉사에 나서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기에 중국은 차츰 신종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승기를 잡아나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조용히 병상에 누워 독서 삼매경에 빠진 모습만으로 중국의 인터넷 스타가 된 사람도 있다.

파란색 옷 입고 팡창의원 병상에 누워 #신종 코로나 전혀 두려워않는 모습으로 #골똘하게 책 보는 게 언론에 보도되며 #일약 인터넷 스타 되며 독서붐 일으켜 #그가 본 후쿠야마의 『정치 질서의 기원』 #중국 온라인 도서 판매서 인기 구가해 #퇴원하며 환우의 15세 아들 돌봄 약속도

성이 푸(付)로만 알려진 그는 최근 중국에서 ‘선비 나으리’ 정도로 의역할 ‘칭류꺼(淸流哥)’란 별명으로 불린다. 중국 언론이 신종 코로나 환자를 긴급하게 수용하기 위해 만든 팡창(方艙)의원을 소개하며 찍은 사진에 그의 모습이 실리며 일약 유명 인사가 됐다.

병상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진 모습의 푸 박사 사진은 신종 코로나 사태 초기 많은 중국인의 공포심을 누그러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중국 신화망 캡처]

병상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진 모습의 푸 박사 사진은 신종 코로나 사태 초기 많은 중국인의 공포심을 누그러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사진은 파란색 상의를 입고 흰색 병상에 누워 골똘하게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이다. 병마에 굴하지 않고 주위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자세로 책을 펴든 모습에 중국에 때아닌 독서 바람이 불었다고 후베이성의 초천도시보(楚天都市報)는 전했다.

그가 어떻게 팡창의원에 입원하게 됐는지가 우선 관심사로 떠올랐다. 중국 언론의 취재 결과 그는 올해 39세로 후베이성 샤오간(孝感)시 출신이다. 우한(武漢)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더 했다.

지난 2일 푸 박사의 고향인 후베이성 샤오간시에 대해 대대적인 소독 작업이 실시됐다. [중국 인민망 캡처]

지난 2일 푸 박사의 고향인 후베이성 샤오간시에 대해 대대적인 소독 작업이 실시됐다. [중국 인민망 캡처]

현재는 미 플로리다주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며 연구 방향은 고해상도전자현미경 분야라고 한다. 지난 1월 말 춘절(春節, 설) 연휴를 우한에 거주하는 부모와 함께 보내기 위해 귀국했다가 그만 신종 코로나의 마수에 걸리고 말았다.

먼저 지난 1월 24일 아버지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일주일 동안 차도가 없어 우한의 셰허(協和)의원을 찾았다가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 또한 기침을 하기 시작해 2월 1일 확진 판정을 받고 5일 장한(江漢) 팡창의원에 입원했다.

후난성 헝양에서 신종 코로나에 걸렸다 회복한 사람이 자신의 혈장을 기증하고 있다. 완쾌한 사람의 혈장이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인민망 캡처]

후난성 헝양에서 신종 코로나에 걸렸다 회복한 사람이 자신의 혈장을 기증하고 있다. 완쾌한 사람의 혈장이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인민망 캡처]

비교적 경증이어서 여러 약물치료 끝에 2월 15일과 17일 두 차례 연속 음성 판정을 받았다. CT 결과에서도 2월 16일엔 염증에 의해 피 성분이 맥관(脈管) 밖으로 스며 나오는 삼출성(渗出性) 병변이 명확하게 개선된 게 나타났다.

병상에서 책을 읽는 사진은 우한에 여러 팡창의원이 건설되기 시작한 2월 초에 찍힌 것이다. 신종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차분하게 자신의 취미 생활을 하며 지내는 모습이 새로운 질병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를 다소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어 많이 소개됐다.

푸 박사가 병상에서 열심히 보던 책인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정치 질서의 기원』도 중국 온라인 서점 판매에서 인기를 누렸다. [중국 환구망 캡처]

푸 박사가 병상에서 열심히 보던 책인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정치 질서의 기원』도 중국 온라인 서점 판매에서 인기를 누렸다. [중국 환구망 캡처]

관심은 그가 무슨 책을 보고 있는지에도 쏠렸다. ‘역사의 종말’을 써 유명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저서 『정치 질서의 기원』이었는데 이게 알려지면서 중국의 인터넷 도서 구매 인기 품목에도 올랐다.

저자인 후쿠야마도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돼 트위터를 통해 중국의 ‘선비 나으리’ 사정을 지인들과 공유했다고 한다. 그는 “그저 좋아하는 책을 보고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인터넷 스타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중국 우한의 장샤팡창의원에서 후난중의약대학 제일부속의원의 주잉 부원장(왼쪽)이 신종 코로나 환자의 맥박을 재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중국 우한의 장샤팡창의원에서 후난중의약대학 제일부속의원의 주잉 부원장(왼쪽)이 신종 코로나 환자의 맥박을 재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마침내 지난달 28일 팡창의원에서 퇴원하게 된 그는 또 한 번 중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일 넘게 팡창의원 생활을 하다 보니 그곳에서 사귀게 된 환우(患友)가 많았다. 그중 43세의 리톈(李甜) 일가가 있다.

리톈은 부모를 모시고 15세 아들과 함께 사는 싱글맘인데 신종 코로나로 어머니가 숨지고 자신과 71세의 아버지, 아들 모두도 감염돼 일가족이 함께 팡창의원에 수용됐다. 아들이 퇴원해야 하는데 자신은 아버지를 간호하느라 의원을 나설 수 없는 형편이다.

중의학으로 신종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는 우한의 장샤팡창의원에서 한 의료인이 환자에게 줄 탕약을 따르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중의학으로 신종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는 우한의 장샤팡창의원에서 한 의료인이 환자에게 줄 탕약을 따르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그러자 책만 보던 푸 박사가 흔쾌히 “걱정하지 마세요. 아드님은 내가 데리고 있겠습니다”라고 제의했다. 퇴원 후에도 2주간 격리 생활을 같이하며 “핸드폰 보는 시간을 통제해 공부를 제대로 시키겠습니다”라는 약속과 함께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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